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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 의무?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불행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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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8일 서울시 봉래동 프랑스 문화원에서 함께 만난 프랑수아 를로르 박사와 김혜남 박사. 그들은 “사회가 만들어낸 사랑과 성공에 대한 환상에 휘둘리지 말고, 평범한 자신을 사랑하며, 좋은 친구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성 기자]

사는 게 녹록하지 않다. 우리들은 집과 학교, 혹은 일터를 시계추처럼 오간다. 행복을 느낄 때보다 일상의 권태와 불안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어떤가. 부모님이 정한 길대로 가야 하는 걸까, 고민에 빠진다. 사랑을 하면 정말 행복해지는 걸까, 연인들의 공통된 걱정이다. 또 성공이란 진정 무엇일까. 정신과 전문의로 ‘행복’을 화두로 독자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온 프랑스와 한국의 두 베스트셀러 작가가 8일 함께 만났다. 『꾸뻬씨의 행복 여행』『꼬마 꾸뻬, 인생을 배우다』를 출간한 프랑수아 를로르(56)가 한국을 방문, 『서른 살이 심리학에 묻다』『서른 살이 심리학에 답하다』의 저자 김혜남(50)씨와 마주 앉았다. 우리가 더 행복해지는 법을 얘기했다.

◆행복, 다른 시각으로 보아라

김혜남=선생께서 쓰신 책을 읽으니 관심사가 겹쳤다.‘사랑’ ‘행복’ ‘시간’ 등이다. 행복의 비결을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라고 쓴 대목도 그렇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져도 우울한 사람이 많은데,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한 행복해지기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불행지수가 높은 사람이 많다.

를로르=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비교 행위가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비교하면서 남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비교하고 경쟁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또 그것 때문에 흔들리고, 좌절한다. 그뿐인가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를 과거와도 비교한다. 그래서 행복은 균형의 문제며, 인성의 문제다.

김=『꾸뻬씨의 행복 여행』에서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많은 것을 갖춘 사람들이 마음이 병들었거나 매우 불행한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이런 사람을 보면 자기 불신이 강하다. 어쩌면 ‘야망’이라는 것도 성취해야 사랑 받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 아닌가.

를로르=사회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 여러분 노력에 달려 있다’고 몰아가는 것도 문제다. 늘 행복해야 하고,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자유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행복해야 하는 게 의무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래서 ‘불행하지 않으면서도 불행한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게 게으르기 때문이며,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거다. 정신과 치료라는 것은 그런 이들에게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김=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 즉 ‘진정한 자아(trueself)’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순간순간 찾아오는 것이다. 일상은 권태롭기도 하고 무덤덤하기도 한데,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범한 자신을 사랑하라

김=요즘 젊은 사람들을 상담하며 깜짝 놀란 게 하나 있다. 그들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사랑 때문에 흔들리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자신은 초연하고, 뛰어나야 하고, 쿨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게 ‘우리는 모두 평범하다’는 것이다. 평범한 것 자체를 창피해 하는 게 잘못이다. 외로움의 반대는 신뢰인데, 나 자신에 대한 신뢰도 중요하다.

를로르=프랑스에서도 같다. 꾸뻬를 주인공으로 책 쓰기 전에 『내 감정 사용법』이란 책을 쓴 적이 있다. 여기서 강조한 게 ‘자아 존중감(self-esteem)’이었다.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사회가 부과하는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라는 얘기였다.

◆우정이 행복의 원천

를로르=행복해지기 위해서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바로 친구다. 책 속의 주인공인 꾸뻬에게는 친구야말로 행복의 원천이다.

김=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건 우정이나 끈끈한 인간관계라는 런던대 연구결과가 있었다. ‘사랑’이 아니었다(웃음). 사랑이 감정의 굴곡을 겪게 하는 반면, 우정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도 이것을 절감한 적이 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안데스산에 가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아, 정말 아름답구나, 그치?”하고 물을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느낌에 허전했다. 자신의 경험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게 소중한 일이다.

◆‘광고’가 권하는 행복에 휘둘리지 마라

를로르=전적으로 동의하다. 어릴 때 선생님이나 부모님으로부터 잘못 배우기도 하는데, 그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행복을 찾는 거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행복 추구 강박사회’다. 미래의 성공만 바라보며 사는 것은 옳지 않다.

김=자기 확신이 부족해서 불행한 사람이 많다. 당신이 언제나 옳다고 말해주고 싶다.

를로르=행복의 두 가지 모습을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다. 순간순간의 짜릿하고 흥분된 행복, 아니면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 광고에서 아무리 짜릿한 행복을 권할지라도 행복이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솔직히 이 말은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말하는 것이다. (웃음)

이은주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프랑수아 를로르=프랑스 파리 출생. 파리 르네 데카르트 대학병원 정신과 과장 역임. 2002년 『엑또르 씨의 행복 여행』(국내에서는 『꾸뻬씨의 행복 여행』)을 내며 인기작가로 부상했다. 『내 감정 사용법』『정신과 의사의 꽁트』『엑토르씨의 사랑여행』등이 국내 소개됐다. NGO단체 알랭 카르팡티에 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김혜남=서울 출생. 고려대 의과대 졸업.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12년간 정신분석 전문의로 근무했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 묻다』『서른 살이 심리학에 답하다』를 썼다. 현재 김혜남 신경정신과 의원 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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