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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북한… 지금 변화중] 9. 과학기술 연구 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조선' 은 북한이 매달 발행하는 선전화보집이다.

지난 3월호는 과학연구에 몰두하는 50대 중반의 한 여성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화제의 인물은 지난해 11월 평양에서 열린 제2천리마 대진군 선구자대회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노력영웅' 현영라 박사.

과학원 유색금속연구소 연구사로 근무 중인 현박사는 특수합금재료 개발의 권위자다.

'과학의 해' 였던 지난해부터 북한 언론은 개발 성과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면서도 현박사의 성공담을 크게 취급하는 등 과학자 역할론을 부각시키고 있다.

김정일(金正日)총비서는 "조국의 부흥 발전은 과학자.기술자들의 손에 달렸다" 며 과학자 격려에 직접 나서고 있다.

과학자 대우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과학기술의 실용화에 기여한 기관.업체에 '감사편지' 를 계속 보내고 있다.

북한 방송들은 또 金총비서가 "첨단과학기술 연구에 자금을 아끼지 말라" 고 지시한 것을 되풀이해 보도하고 있다.

과학연구 예산의 증액은 국가예산 편성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에 전년대비 10%, 올해에 5.4% 늘어났다.

북한의 과학기술 붐은 金총비서가 지난해 1월 국가과학원을 시찰한 직후부터 일기 시작했다.

3월에 열린 전국과학자.기술자보고대회는 '과학기술발전 5개년계획' 을 확정함으로써 21세기에 대비한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계획에는 농업.전력.금속공업 등 산업현장의 과학기술뿐 아니라 유전자공학.첨단소재.레이저 및 핵융합 등 첨단분야의 구상도 담겨 있다.

북한은 이미 1988년과 91년에도 당 차원에서 과학기술발전 3개년계획을 확정한 적이 있지만 10여년간의 경제재난을 겪으면서 난항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적극적인 정책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을 경제 회생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의지는 올들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신년 사설이 이른바 '강성대국' 건설의 3대 기둥의 하나로 과학기술 중시를 내걸었고, 4월 4~6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0기 3차회의에선 과학기술 인력양성 및 투자가 강조됐다.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책공업종합대학 홍서헌 총장은 생산현장의 요구를 중시하는 '과학연구사업 실리주의' 를 표방해 관심을 끌었다.

북한판 산학(産學)협동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북한관영 조선중앙방송이 지난 3월 2일 金총비서가 "생산에 도입되지 않는 과학기술은 빈 종이장" 이라면서 실용적인 기술개발을 강조했다는 보도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은 국방과학분야에서 98년 광명성1호(다단계 로켓)를 발사할 정도로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정작 민간분야 산업기술은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데 고민이 있다.

이런 문제점은 옛소련을 비롯해 사회주의국가들이 겪어온 고질병이다. 북한 당국이 과연 이를 제대로 치유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아무튼 북한은 요즘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모든 공장.기업소의 생산을 정상궤도에 올려세울 수 있다" 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부터 농업.공업.전력 등 각 부문에 '2.17과학자.기술자돌격대' 를 투입해 기술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99년 7월부터 올 10월까지 공장.기업소 '4.15기술혁신돌격대' 간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전국 규모의 기술혁신경기도 진행 중이다.

산업현장에 쓸모있는 기술개발에 힘쏟는 흔적이 역력하다.

농업분야에선 감자 증산과 이모작 확대를 위한 품종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옥수수박사' 김순권 교수(경북대)가 북한 농업과학원과 공동으로 시험 중인 슈퍼옥수수 프로젝트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식물보호연구소와 원산농업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벼.옥수수.콩 품종 개발, 그리고 지력보호와 증산을 동시에 꾀하는 미생물 복합비료 개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오랜 기간 침체에 빠졌던 해외교류도 근래에 늘고 있다.

97년 조인된 조.러과학기술협정에 따라 전자.생물학.농업분야의 프로젝트 20여개가 추진 중이다.

최근 북한기술자 2백50여명이 러시아 기관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러시아의 박사급 연구자 50여명, 준박사급 1백여명이 평양을 다녀갔다.

현대경제연구원의 황동언(黃童彦)연구위원은 "북한이 옛사회주의권과의 기술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서방의 과학기술도 적극 도입하려 할 것" 이라고 전망한다.

북한이 과학기술 개발을 통해 산업생산성을 높이고 경제회복을 촉진시키려는 노력은 앞으로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이같은 노력이 과학기술의 해외교류 확대와 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북한경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별취재반〓유영구.최원기.정창현.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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