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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현장] 토공·주공 합쳤더니 이런 일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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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4.2:75.8’대 ‘100:0’

어느 것이 황금비율일까? 요즘 국토해양부의 고민이다.

사연은 이렇다.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를 합쳐 10월 1일 출범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를 “진주(경남)로 옮기느냐 전주(전북)로 옮기느냐”로 국토해양부가 골머리를 썩고 있다.

LH가 통합하기 이전에는 주택공사는 진주로, 토지공사는 전주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LH가 출범한 뒤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난감한 처지다. 국토해양부는 지난달 4일 이해관계자들과 이 문제를 논의한 데 이어 8일에도 차관 주재로 또다시 협의할 예정이다.

국토해양부의 정종환 장관은 LH로 통합했지만 본사를 분산 배치한다는 원칙을 시사했다. 한마디로 ‘사장이 가는 본사’와 ‘사장이 안 가는 본사’로 나누자는 것이다. 사장이 가는 지역은 본사의 기구와 인원을 적게 하고, 사장이 안가는 지역은 많게 해야 공평하다는 발상이다. 이에 따라 국토해양부는 경남과 전북에 분할 비율을 얼마로 했으면 좋을지 각자 안을 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경남은 한 곳으로 일괄이전을 요구하며 분할 비율을 ‘100:0’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전북은 ‘24.2:75.8’이라고 제안했다. 사장이 있는 본사 지역은 경영지원본부·감사실 등의 기구와 인원으로 24.2%면 적당하고, 사장이 없는 본사 지역은 나머지 실무부서로서 75.8%의 기구와 인원이면 좋다는 의견이다. 본사 분할에 소수점까지 나오는 황금비율을 내놓은 셈이다.

역대 정부는 지역균형 발전을 앞세워 바이오·나노산업 등을 지원한 사례가 많았다. 이를 목적으로 정부가 예산을 확보할 때는 한두 지역을 특화시켜 집중 지원하겠다고 했다. 경제적 효율성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만 지나면 전국 8도가 너도나도 바이오·나노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아우성치기 일쑤였다. 각종 압력에 시달리는 정부 부처는 편법으로 ‘전국 8도 분할’ 지원안을 내놓곤 했다. 잡음을 싫어하는 ‘공무원의 황금분할 방식’ 모델인 셈이다. 정부의 무책임·비효율·보신성 자원 분할은 이렇게 수없이 반복돼 왔다. LH 본사의 이전 논의도 같은 맥락이다.

통합한 LH의 자산실사가 끝나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부채만도 6월 말 현재 100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순이익 전액을 매년 빚 갚는다 해도 100년이 넘게 걸린다는 얘기다.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어렵사리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합친 게 LH다. 이런 식으로 분할할 바에야 차라리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로 다시 나눠 각각 이전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나올까 걱정스럽다.

김시래 산업경제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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