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달라이 라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넓은 바다라는 뜻의 몽골어에서 파생한 '달라이 라마' 는 티베트 불교인 라마교의 최대 종파인 겔루크파 종정(宗正)을 지칭한다. 1578년부터 티베트의 성속(聖俗) 양권을 장악한 승왕(僧王)의 칭호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티베트인들은 이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티베트가 외세의 영향 아래 놓여 있을 때 이 말이 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달라이 라마 대신 '존경스러운 왕' 이란 뜻의 티베트어인 '걀포 리포체' 라 부른다. 달라이 라마의 부모가 아들을 호칭할 때는 보다 친밀한 '쿤뒨' 이란 표현을 쓴다. 티베트어로 그저 단순히 '현존(現存)' 이란 의미다.

티베트의 마지막 승왕인 달라이 라마 14세가 등극한 것은 그의 나이 겨우 다섯살 때인 1940년이었다. 두살 때 라마교 고승들에 의해 티베트 수호신의 현신(現身)으로 발견돼 수도 라사에 옮겨진 지 3년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은 이 어린 왕을 한결같이 '살아 있는 부처' 로 떠받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영국군에 의해 인도의 포로수용소에 억류됐다가 탈출해 티베트에서 7년을 살았던 독일 작가 하인리히 하러는 그의 저서 '티베트에서의 7년' 에서 신년 축제 때 달라이 라마가 군중 앞에 현신하는 모습을 이렇게 쓰고 있다.

"그들이 경배하는 대상은 단지 한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수천명의 연합된 믿음의 목표, 그들의 기원과 동경, 그리고 희망의 총체였다.

라사든 로마든 그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한 가지는 신을 발견하고 신에게 헌신하고자 하는 소망이다. 이런 소망이 서로 떨어지려는 사람들을 강하게 하나로 묶어준다.

눈을 감는다. 중얼거리는 기도 소리, 장엄한 음악, 연기를 피우며 밤 하늘로 올라가는 유향…. "

하지만 티베트인들에게는 초월적인 존재였던 달라이 라마도 현실정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듯 50년 중국군의 침입으로 나라를 잃은 지 이제 꼭 반세기에 접어든다. 온갖 탄압과 역경 속에서도 독립운동을 이끈 공로로 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나라를 되찾겠다는 그의 꿈은 실현이 요원해 보인다.

최근 불교계가 달라이 라마의 한국 초청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해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정치적 인물' 이라는 이유로 입국불허 방침을 유지하도록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의 입장이야 어떻든 우리 불교계가 초청하려는 사람은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주일 뿐 독립운동을 하는 망명 티베트 정부의 승왕이 아니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종교행사가 차질을 빚는다면 그 결과는 다른 문제에까지 파급될 수 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