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그린벨트 해제 그 다음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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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입법예고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지정.관리 특별조치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제정안은 말이 지정.관리이지 내용면에서 '그린벨트 해제법' 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7월 '제도개선안' 발표 이후 시민단체와 관련학계.언론 등은 사유재산권은 보호해 주되 그린벨트의 골격만은 훼손되지 않게 합리적인 보완대책을 줄곧 촉구해왔었다.

그러나 입법예고된 시행령은 민원해소에 치중한 나머지 이미 훼손된 그린벨트를 추인해주는 수준에 머물렀다. 훼손 면적의 몇%라도 새로 지정하겠다는 의지와 철학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린벨트는 일단 훼손되면 복원이 안되고 정부가 재정을 들여 새로 확보.조성할 수 있는 여건도 못된다. 따라서 대폭 해제에 앞서 그에 따른 난(亂)개발과 투기.자연환경 보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서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해제에만 급급해 이런 보완대책이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 한 예로 그린벨트 지역 땅값이 인근지역의 절반 이하인 경우 소유자가 팔기를 원하면 정부가 사들여 그린벨트로 지정한다고 하는데 이야말로 눈가리고 아웅이다.

개발해서 팔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열렸는데 그런 땅이 나올 리 없다. 또 개발자에게 훼손부담금을 물려 지역주민들을 지원한다지만 이는 개발남용을 부추길 수도 있다.

이미 그린벨트 내 토지의 44%가 외지인 소유다. 지금은 부동산경기가 침체돼 있지만 국지적 투기열풍을 불러올 소지 또한 적지 않다.

개발에 따른 이익이 국가와 지역사회에 환원되도록 세무당국의 철저한 사전.사후추적 등 제도적 장치들을 점검.강화하는 일이 급하다.

그린벨트의 운명은 이제 지방정부 등 일선당국으로 넘어갔다. 각 지자체들은 난개발 경쟁을 자제하고 개발과 보전이 균형을 이루는 철저한 계획 아래 환경친화적 선진형 전원도시로 탈바꿈시켜 그린벨트 해제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 중앙정부와 시민단체 또한 철저한 감독과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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