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BS '아름다운 성' 의견 분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우리 지상파 방송이 수용할 수 있는 성담론의 수위는 어느 정도일까.

지상파 방송 사상 최초로 '성인들의 성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접근' 을 표방한 SBS '아름다운 성(性)' (토 밤12시)의 첫방송이 1주일간 보류된 일을 놓고 방송가에 논의가 분분하다.

SBS의 이같은 결정은 사내 심의팀이 프로그램을 사전에 보고 내놓은 '이대로는 방송불가' 의견을 최고경영진이 수용한 데 따른 것이다.

본래 22일 방송예정이던 '아름다운 성' 의 첫회는 '남자들의 횟수' 가 주제. 결혼경력 2개월~10년 사이의 벤처기업가.기자.시나리오작가 등 30대 기혼남성들이 출연, "신혼초 2주가 요새 1년치" "아기가 깨면 치명적" 등 기존 프로그램에서 들어볼 수 없었던 솔직 담대한 표현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SBS 심의팀의 박영호팀장은 "특정 표현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공중파에서 내놓고 방송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라면서 "그대로 내보낸다면 방송위원회로부터 어마어마한 징계를 받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반면 연출을 맡은 박정훈PD는 "우리 사회 성문제의 많은 부분이 폐쇄적인 성문화에서 기인한다" 면서 "청소년도 아닌 성인 대상인만큼 그 수준에 맞는 솔직한 얘기가 등장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처방도 힘들지 않겠느냐" 고 반박했다.

박PD는 선정성을 우려하는 시각에 대해 "방송시간이 심야인데다가 화면 우측 상단에 미성년자 시청불가 표시를 하고, 토크 이외의 재연방식을 일체 도입하지 않는 등 고심했다" 면서 "내용을 시사한 노조위원장도 '성인용 성교육프로그램' 이라고 평했을 정도" 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완수 편성부본부장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입장의 차이" 라면서 "방송사 내에서도 세대에 따라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출연자들의 진실한 태도를 높이 사고 싶다" 고 털어놓았다.

SBS측은 프로그램을 주말 방송에 앞서 25.26일 사내 관계자.방송담당기자들에게 공개해 '여론' 을 가늠 중이다.

기자가 시사한 테이프는 도입부에 기획취지를 설명하는 자막과 내레이션을 삽입하고, 성관계 시간에 대한 출연자 발언 등을 삭제해 재편집한 것.

주제가 주제인 만큼, 출연자들의 진솔한 발언에는 지나치게 익살스런 표현이나 다소 남성중심적인 시각이 등장하기도 했으나 전체 프로그램은 '만족도는 횟수보다는 부부간의 상호교감이 중요하다' 는 메시지를 무리없이 전달했다.

제작진은 정신과전문의 표진인씨.성교육강사 구성애씨 등의 도움말과 관련 통계자료, 남성들의 대담내용을 미용실에서 지켜본 30대 기혼여성들의 소감 등을 곁들여 남녀 상호의 이해를 높이도록 했다.

'21세기여성미디어연구회' 의 최영애 공동대표(한국성폭력상담소장)는 이번 논란에 대해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보지못해 평가하기 어렵다" 고 전제하면서도

"성에 대해 공식.비공식 논의가 범람하고 있는 현실에서 공중파 방송이 공개적인 논의의 장을 이제야 마련한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면서 "방송매체가 그동안 가십성 겉핥기로 성을 끊임없이 상품화해 온 점을 감안하면 본격적인 접근이 오히려 긍정적" 이라고 말했다.

제작진은 "첫회가 총론적 성격이었다면, 이후에는 '여성들의 성욕' '신혼여행' 등 세분화된 주제를 차례로 다룰 예정" 이라고 밝혔다.

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