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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이총재 협상 스타일 비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24일 영수회담에서는 두 정치인의 평소 협상 스타일이 그대로 풍겨나왔다.

金대통령은 "사전에 설득논리를 준비한 뒤 협상테이블에서는 순발력을 발휘해 성과를 극대화하는 게 장기" 라는 것이 정치권의 오랜 평판이다.

李총재는 "판결문을 준비하듯 치밀하고 꼼꼼한 사전준비를 해 오차없는 결과를 끌어내는 쪽" 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날 회담에서 金대통령은 '인위적 정계개편을 하지 않는다' (발표문 2항)는 내용에 이르러 과거 3당합당, 1996년 4.11총선 후 신한국당의 야당의원 영입사 등을 李총재에게 두루 설명한 뒤 "대화와 협력, 정책대결을 한다면 왜 인위적 정계개편을 하겠느냐" 는 논리를 펼쳤다.

야당의원 빼가기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면서 역(逆)으로 대화정치.정책대결 협력을 야당측에 주문하는 어법(語法)인 셈이다.

金대통령은 대학노트에 李총재의 '주요 발언' 을 메모해가면서 야당총재에 대한 예우도 깍듯이 했다고 박준영(朴晙瑩)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지역주의.인사청문회.여야의 존경과 신뢰 등 李총재가 제기한 화두(話頭)마다 준비된 논리와 설명을 곁들여 공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李총재가 "대화정치가 되면 적극 협력하겠다" 고 하자 金대통령은 "정말 부탁한다. 나도 그렇게 하겠다" 고 맞장구치며 때론 감성적인 접근을 하기도 했다.

외국 정상과의 회담마다 대학노트 한권 분량의 '준비자료' 를 작성하고, 모든 연설문을 두세차례 자신의 논리에 맞게 수정하는 'DJ스타일' 이 그대로 엿보인 셈이다.

李총재는 DJ와의 협의 도중 공동발표문 3항을 즉석에서 수정해냈다.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 '법률에 의해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 국민의 부담은 국회 동의를 받는다' 는 대목에서 '법률에 의해' 를 삭제하자고 해 관철한 것.

회담 직전 공동발표문 초안을 살펴보던 李총재가 대북지원 관련 법률에 국회 동의를 요하는 사안이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때문에 발표문 준비협상을 맡았던 하순봉(河舜鳳)총장과 맹형규(孟亨奎)비서실장은 머쓱해 하기도 했다는 것.

남북 정상회담의 평가, 부정선거 수사 관련 어구 하나하나에도 李총재가 신경을 써 23일 준비접촉에서는 孟실장이 30여분 가까이 옆방에서 전화지시를 받아야 했다.

회담 후 "(일부 대화록은)내가 당에 가서 설명하겠다" 고 말해 박준영 대변인은 청와대 기자들에게 상당부분을 공란으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판사 시절 "예술작품을 쓰듯이 판결문을 쓴다" 고 했던 그의 스타일은 지난 연말 총재단회의에서 수천쪽의 법전을 직접 찾아가며 선거구획정안의 문제점을 찾아냈던 사례에서도 드러난 적이 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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