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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북한… 지금 변화중] 2.공장·기업소가 달라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해 11월 13일자 2면에 크기는 작지만 의미심장한 기사를 실었다.

제목은 '경제사업에서의 실리보장' . 김정일(金正日)총비서가 지난해 6월 신의주 화장품공장을 둘러보다 강조한 한 구절이 눈길을 끈다.

"공장 건물만 요란하게 지어서는 소용이 없다. 경공업 공장에서는 인민들에게 실지(실제로) 필요한 상품을 많이 생산해야지 멋따기(멋부리기) 놀음을 해서는 안된다." 그의 질타는 '북한판 실용주의' 의 신호탄이라 할 만하다.

이 신문은 "실용적 가치를 엄밀히 타산하고 경제사업을 알속(실속)있게 해야 한다" 는 등의 해설을 붙였다.

金총비서의 지시를 반영한 듯 올해 신년 공동사설은 "모든 부문에서 실리를 철저히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요즘 평양에선 말끝마다 '실리 보장' 이다.

1998년 9월 출범한 홍성남(洪成南)총리의 새 내각이 이전보다 젊은 경제관료들로 충원되면서 경제 실용주의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장.기업소가 달라지고 있다.

공장.기업소를 둘러본 한 동포 기업인은 "지난해 지배인 임기가 만료된 일부 공장.기업소에서 근로자들이 새 지배인을 직접선거로 선출했다" 고 전한다. 이는 실적을 올릴 만한 사람을 지배인 자리에 앉히겠다는 현실적 요구와 근로자들의 생산의욕 고취라는 두마리 토끼를 함께 잡으려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선 지난 몇년간 숱한 공장들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근로자들에게 생활비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심각한 상태가 계속됐다. 북한 당국으로선 생산 열의 높이기가 최대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일본 동북아경제연구소 이찬우(李燦宇)연구위원은 이 조치에 대해 "공장의 가동중단과 식량난으로 이탈했다 돌아온 근로자들의 근로의욕을 고취하려는 것" 이라고 분석한다.

기업지배인 직선제는 경영의 독자성 확대와 직결돼 있다. 중국 베이징(北京)에 주재하는 북한 대외경제부문의 한 관계자는 "기업 경영의 독자성이 확대되고 있다" 고 밝혔다.

이와 관련, 金총비서는 지난 1월 25~28일 평북지역 공업부문을 현지지도하면서 '공장.기업소들의 관리운영 사업을 개선.강화하며 경제사업에서 새로운 혁명적 전환을 일으키는 데 지침이 되는 강령적인 과업들' 을 제시했다고 한다.

기업경영의 변화를 시사한 대목이다.

또다른 변화는 85년 7월 전면도입된 연합기업소(업종.지역.생산연계에 따른 기업집단군)체제가 구조조정에 들어간 데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말 북한 전역에서 연합기업소.종합기업소 등 콤비나트식 대규모 공장체인망이 폐지되고 개별 공장.기업소나 관리국 체제로 축소됐다.

10여년간 계속된 경제침체기 동안 한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면 다른 공장에 연쇄 파급효과를 주어 10여개 이상의 공장을 포괄하던 연합기업소 전체가 통제불능 상태에 빠지는 일이 빈번했다.

이 체제를 수술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규모 축소에 들어간 연합기업소는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도 50여개에 이르며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통일연구원 김영윤(金瑩允)선임연구원은 이 조치를 "기업의 효율적 관리에 목표를 두고 생산의 내실화를 겨냥한 것" 이라고 분석한다.

북한의 최근 변화에 대해 무너진 계획경제체제를 다시 일으켜세우려는 중앙집권화의 방편으로 이해할 것인지, 혹은 그 반대로 시장사회주의에서 흔히 나타나는 기업독자성 향상으로 볼 것인지는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공장.기업소에서 강조되는 독립채산제 강화, 가격.이윤 등 경제 지렛대 활용, 생산성 제고 및 품질관리 등의 경제 모토가 변화의 씨앗을 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별취재반〓유영구.최원기.정창현.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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