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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나는 중국을 오해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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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SK에너지의 아스팔트도 그중 하나다. 그동안 중국에 판 고급 아스팔트가 1000만t을 넘었다고 한다. 지구 3바퀴 거리의 4차선 도로를 도배할 수 있는 양이다. 만리장성의 5배가 넘는다. 중국의 고속도로 총 길이는 미국의 절반인 6만㎞ 남짓. 그런데도 중국은 올 상반기에만 1만2000㎞에 달하는 111개 고속도로 공사를 새로 발주했다. 그만큼 중국의 경기 부양책은 무지막지하다. SK는 아예 아스팔트 사업부를 중국으로 옮길지까지 고민하는 모양이다.

지난 30년간 중국이 질주할 동안 서방 전문가들은 중국이 언제 쓰러질지만 따졌다. 지금도 중국의 상승세가 언제 꺾일지 점치는 데 열중하고 있다. 부질없는 일이다. 먼지 낀 안경으로 세상을 보면 온통 뿌옇게 보인다. 구체적인 통계를 하나 들어 보자. 세계 1~3위(시가총액 기준) 은행은 오랫동안 시티그룹-BOA(뱅크 오브 아메리카)-HSBC 순이었다. 올해 그 자리를 중국공상은행-중국건설은행-중국은행이 차지했다. 미국·유럽의 대형 은행들이 꼬꾸라진 공백을 나란히 꿰찬 것이다. ‘난세에 영웅 나고 불황에 거상(巨商) 난다’는 옛말이 있다. 베이징에 와보니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중국이 4조 위안(880조원)의 경기부양 카드를 꺼내자 그 대담함에 세계가 놀랐다. 중국은행들이 올 상반기에만 7조4000억 위안을 풀었다는 통계가 공개되자 또 한번 까무러쳤다.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중국의 재정은 의외로 탄탄하다. 2년 전에는 재정흑자를 기록했다. 중국은 금융이 실물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금융이 실물을 지원해야 한다는 고전적 기능에 충실하다. 중국 은행들의 예대비율은 80%의 보수적 기준조차 밑돌고 있다. 절반 이상의 대출이 국영은행을 통해 국영기업으로 흘러갔고, 사회간접자본(SOC)에 집중 투자되고 있다.

몰라보게 세련된 중국의 전략도 무릎을 치게 만든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2조 달러를 넘었다. 위안화 평가절상을 압박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요란하다. 예전처럼 미 국채를 뭉텅이로 사기에는 조심스럽다. 미국이 대놓고 달러화를 찍어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전체 미 국채를 7% 정도 갖고 있다고 언제까지 큰소리를 칠지 장담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혜를 짜내 찾은 새로운 돌파구가 국제원자재 확보다. 중국은 거액의 달러를 동원해 원유와 희귀금속을 전방위로 사재고 있다. 달러 약세와 인플레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놓고, 위안화 절상 압력도 회피하려는 수순이다. 고단수의 꽃놀이 패를 연상시키는 노련한 행마다.

물론 중국이라고 고민이 없지는 않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더 이상 ‘대수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국이 계속 10%대 성장의 경제기적을 이어가긴 어렵다.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 이상 줄었고, 중국을 겨냥한 무역마찰은 두 배 이상 늘었다. 해마다 25%씩 늘어난 설비투자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언제 과잉설비로 돌변해 중국을 위협할지 모른다. 비효율적인 국영기업에 대한 집중적인 대출도 부실채권이라는 흉기가 될 수 있다. 여전히 모호한 법률과 제도는 단기적 사고방식을 조장해 기업가들이 가능한 한 빨리 본전을 뽑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남들은 더블딥과 실업의 하방위험(downside risk)에 내몰려 있는데, 중국은 경기과열과 자산 거품의 상방위험(upside risk)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더 행복할지는 분명하다. 단연 중국이다. 중국은 또 쓰촨성 대지진, 소수 민족의 폭동 같은 격랑들을 무리 없이 헤쳐 나왔다. 서방 언론들의 불길한 예언은 번번이 빗나갔다. 어쩌면 우리의 중국에 관한 가장 큰 오해는 중국이 경제적으로만 발전한다는 관념일지 모른다. 요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빈번하게 거론하는 단어는 ‘허셰(和諧·조화)’다. 허셰는 유교의 원형질이다. 이미 공자 탄신일은 국가급 행사로 격상돼 공산당 간부들까지 몰려들 정도다. 경제만큼 중국의 정치와 사회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둘러본 중국 거리는 활기차고,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베이징에서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