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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일 만에 국회 돌아와 의장실 기습점거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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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일 국회 본회의는 개회하자마자 정회됐다. 민주당의 세 의원 때문이었다. 천정배·최문순·장세환 의원이 주인공이다.

하루 전인 1일 오후 이들은 국회의장실을 기습 점거했다. 이유는 “왜 빨리 우리들의 의원직 사직서를 처리해주지 않느냐”였다. 천·최 의원은 지난 7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미디어법이 통과된 후, 장 의원은 지난 10월 미디어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항의하며 의원직 사직서를 냈었다. 의장실을 점거하기 전 세 의원은 김형오 의장을 만나 미디어법 재개정을 요구했다. “헌법재판소가 미디어법 재논의 결정을 했으니 즉각 재논의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가 낸 사직서를 처리해 달라”는 거였다. 김 의장은 “미디어법 문제는 헌재에서 이미 무효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정리됐다”며 “의원직 사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1시간20분에 걸친 실랑이 끝에 김 의장은 “그만하자”며 나갔고, 세 의원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한 뒤 의장실 점거에 들어갔다. 세 의원은 도시락을 먹으며 밤을 새웠다.

문제는 2일 오전 한국을 국빈 방문 중인 라슬로 쇼욤 헝가리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하기로 돼 있다는 점이었다. 외교 결례를 우려한 국회 경위들은 이들을 강제로 퇴거시켰다.

2일 오후 2시 이들은 다시 국회 3층 의장실로 몰려왔다. “항의 차원에서 본회의에 참석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민주당이 의견을 모으는 바람에 응원군들까지 함께했다. 결론적으로 이런 소동 때문에 본회의는 정상적으로 열리지 못했다. 국회가 이날 처리키로 한 안건은 재래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 등을 포함해 모두 81건이었다. 법안 명칭에서 보듯 ‘서민·민생 법안’도 수두룩했다.

천 의원과 최 의원은 의원직 사직서를 낸 뒤 132일(장 의원은 34일) 동안이나 장외를 떠돌았다. 국회로 돌아온 이들이 맨 먼저 한 일은 의장실 점거, 그리고 본회의 파행이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민생의 몫이 됐다.

의원의 소신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소신은 상대적이다. 내 주장만 옳고 남은 틀렸다고 해서는 의회정치가 설 자리는 없다. 천 의원은 지난 정부에서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다. 그는 지금 여당의 국회 운영을 독선적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2000년 여당인 민주당 원내부총무 시절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어주기 위한 국회법을 운영위에서 편법 처리해 비판을 산 일이 있다.

허진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