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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첨탑 금지’에 유럽이 시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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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슬람 사원 첨탑 건설을 금지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의 한 건물 앞에 모여 있다. 시위자들이 현장에 갖고 나온 첨탑 모양의 조형물에는 “모든 무슬림”이란 글자가 쓰여 있다. [제네바 AP=연합뉴스]

이슬람 사원의 첨탑(미너렛)을 더 이상 짓지 못하게 한 법안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57.5% 찬성으로 통과된 이후 유럽 이 종교차별 논란으로 뜨겁다. 인권과 종교의 자유가 가장 잘 보장된다는 유럽에서 21세기 들어 무슬림 이민자와 정통 유럽인 사이에 마찰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양측의 갈등이 다시 표면화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찬반=무슬림 국가와 단체들은 격앙된 표정이다.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종교의 자유는 고유 권리로 국민투표에 부쳐질 성질이 아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2일 보도했다. 이슬람권 최대 국제기구인 이슬람회의기구(OIC)의 에크멜레딘 이흐사노글루 사무총장은 “다양성과 종교의 자유, 인권을 존중하던 스위스의 이미지가 퇴색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스위스 내에서도 로잔·제네바 등지에서 수천 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시위를 벌이며 금지안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우파인 국민당과 기독당이 법안을 주도한 데 대해 사민당 출신인 미슐린 칼미레이 스위스 외무장관은 “한쪽의 도발은 다른 쪽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며 “서로 다른 문화·종교의 공존을 파괴하는 행위는 스위스 안보에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유럽의 우파 정당과 언론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슬람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장마리 르펜 당수는 “프랑스에서도 학교 식당의 이슬람 메뉴와 공공장소에서의 이슬람식 기도, 이슬람 휴일, 정부의 모스크 지원 허용 등을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벨기에 극우정당인 블람스 벨랑(VB)과 네덜란드의 ‘자유를 위한 정당’도 스위스와 같은 내용의 법안 발의를 주장했다.

스위스 국민당은 미너렛 금지에서 더 나아가 강제 결혼 및 여성 할례, 공공장소에서의 부르카(이슬람 여성의 전통 의상) 착용 금지 입법을 추진 중이 다. 스위스 유력지 ‘블릭’은 “우리는 자신을 부끄러워해선 안 된다”며 금지안을 지지하는 제목을 1면에 달았다.

◆유럽서 가중되는 이슬람 공포=에벨리네 비드머 슐룸프 스위스 법무장관은 미너렛 금지안 통과가 “이슬람 근본주의 경향에 대한 국민의 두려움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내 무슬림 인구는 5000만 명으로 2015년엔 1억 명을 넘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최근의 반이슬람 움직임들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유럽 언론들은 분석한다. 2005년 덴마크 일간지가 이슬람교 예언자 마호메트를 풍자하는 만평을 실었다가 무슬림의 거센 역풍을 맞았다. 프랑스에선 2004년 공립학교에서 무슬림 여학생의 히잡(머리 가리개) 착용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됐고, 최근엔 부르카 착용 금지 조치로 무슬림의 반발을 샀다. 독일의 일부 주도 교사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했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프랑스·독일 등이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에 난색을 표하는 것도 아랍인들이 터키를 경유해 무제한 유럽에 흘러들어 올까 두려워하는 것이 그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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