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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코드 2000] 7. 부조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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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처녀 총각들의 결혼 시즌이다. 부모에게는 잘 키워 떠나보내는 '자식 농사' 의 결실이요 신랑 신부에게는 새 가정의 출발이다.

그 결실과 새 출발에 하객들은 하얀 봉투에 나름의 정성을 넣어 진심으로 축하한다.

사람은 태어나 부모 슬하에서 성장해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살다 죽는다.

일생의 매듭 즉 돌.결혼.환갑.장례 때 잔치를 베풀어 주위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운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기쁨과 슬픔을 나누러 참석한다. 가지 않으면 그 공동체에서 영원히 추방당할 것 같아 기필코 간다.

주위의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우리의 부조 문화. 이런 우리의 상부상조 문화에 대해 청나라 사상가 캉유웨이(康有爲)는 "조선인이 갖고 있는 뜨거운 마음의 표시" 라 했다.

또 근대일본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조선인의 서로 주고 받는 인심은 곧 그들의 친선과 국력이 됐다" 고 평가했다.

어느 민족에게든 상부상조의 문화가 없지 않겠지만 특히 우리 민족의 서로 돕는 문화는 외국인의 눈에도 남다르게 비친다.

"주위 사람의 애경사(哀慶事)를 함께 거드는 부조는 한국인의 삶의 리듬입니다. 지연.혈연.문화전통의 공유에서 우러나온 정(情)의 한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부조야말로 우리 민족 공동체 삶의 불문율이며 한 핏줄의 뜨거운 정이 엉켜있는 것입니다." 한국인 마음의 뿌리를 연구해오고 있는 김열규 인제대 교수는 우리의 부조 문화를 한민족 문화전통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법보다 더한 삶의 불문율로 보았다.

단군 너머 아득한 고대 북방 유목 시절부터 우리 민족은 상부상조의 정신을 제도화해 냈다.

그 전통이 삼한시대로 내려와 한반도에 남긴 유적이 소도(蘇塗)다. 부족마다 소도라는 성역이 있어 고대 유목민들은 그곳에서 음식 등 필요한 것을 얻었다.

자식과 부모를 잃고 먹을 것 없는 노인과 아이들도 그곳에서 지냈다.

"상부상조하는 소도 네트워크를 통해 고대 유목민들이 씨족.부족을 넘어 자유롭게 천하를 넘나들었으며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보살폈다" 는 것이 고대 우리 호혜(互惠)의 문화를 찾는 시인 김지하씨의 주장이다.

이런 상부상조의 전통은 두레.품앗이.향약.계 등으로 이어지며 끊임없이 한국인의 정을 제도화해 내고 있다.

한 마을의 모든 일을 함께 하는 두레가 있다.

'마을 사람 모여라, 논물 대고 볍씨 뿌리고 벼베기며 타작 같이 하자' 는 게 두레다.

농사의 시작과 끝에 우리는 그렇게 모여 막걸리 마시며 같이 힘을 나누며 살아왔다. 이 두레 마을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쌀도 많이 수확하고 나무도 많이 해 같이 배부르고 따뜻하게 함께 살아 일생의 매듭을 함께 넘으며 재미있게 살자는 것이 상부상조의 마음이다.

두레에서 이어진 전통 중 오늘도 흔히 말하는 품앗이란 게 있다. 내가 너에게 받은 것은 반드시 되갚겠다는 것이다.

논의 모심기를 도와준 그 사람의 논에 가서 그 일을 해주고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며칠 밤을 새며 슬픔을 함께 하고 험한 산길에서 상여를 메주었으면 나도 반드시 그 일을 해주는 품, 일 나누기가 품앗이다.

이런 전통이 고을마다의 약속이 된 게 향약(鄕約)이고 그 전통을 이어 받은 것이 계(契)다.

돌.결혼.환갑.장례 등 대소사를 치르기 위해 서로 일정 부금을 모으는 것이 계다.

산업화 시대 지금은 금융기관이 그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친목계.향우회계 등이 끈끈한 우리의 정과 의리로 남아있다.

"반 시간도 채 안되는 시간에 2만~3만원 남짓, 혹은 그보다 더 크고 작은 돈 봉투들이 모여 식장 사용료.잔치비.폐백비를 다 치를 수 있었을 때 참 고마웠습니다." 친척의 결혼식 때 축의금을 접수한 유호성(40)씨의 말이다.

"내가 진정으로 고마웠고 축하 받았던 그것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마음으로 부조금을 냅니다."

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 이근채(50)씨. 초상이 나면 온동네 아낙들이 쌀이며 달걀이며 식품들을 가지고 모여들어 전을 부치고 찌개를 끓인다.

남정네들은 천막 치고 불피우며 고인의 덕담으로 밤을 새우다가 상여를 메고 나갔다는 이씨. 그런 정성이 현대 도시 생활에서 부조금이란 봉투에 담기는 것이다.

돌.결혼.회갑.장례 등에 부조금으로 나가는 돈은 헤아리기 힘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한 해 결혼 축의금만 2조원.

결혼 축의금보다 더 많은 장례 부의금과 돌잔치에 건네는 금반지 한돈, 환갑.칠순 잔치까지 합치면 그 액수는 어림하기조차 힘들다.

거기에 바쁜 시간을 쪼개 잔칫집에 가서 거들고 장지에 따라가는 것까지 돈으로 환산한다면 가위 천문학적이다.

그래서 수시로 날아드는 청첩장.부고 받기가 솔직히 겁난다는 아우성도 나온다.

때문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가정의례준칙도 있으며 공무원.정치인은 부조금을 받을 수 없다는 강령도 나온다.

'정승의 개가 죽으면 조문을 해도 정승이 죽으면 안간다' 는 불순한 주고 받음이 상부상조의 전통에 끼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끈끈한 정과 베풀고 갚지 않으면 못 배기는 염치와 의리의 불문율, 이 사이를 '현대인의 얄팍한 이기심' 이 교묘히 파고들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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