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주·허준호 뮤지컬 더블 캐스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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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내가 욕심을 좀 부렸다.배역이 매력적이라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 "

한국 뮤지컬 하면 바로 연상되는 남경주(37)가 후배 허준호(36)에게 미안해 한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될 뮤지컬 '라이프' (14~23일.02-577-1987)의 조조역에 더블 캐스팅(한 배역을 두 명이 돌아가며 연기)된 것.

1998년에도 공연된 '라이프' 의 조조는 뮤지컬 배우 허준호를 널리 알린 배역이다.

둘은 서울예전 1년 선.후배 사이. 허준호가 답한다.

"나는 누가 더블 한다면 언제나 환영이야. 너무 바쁘거든. 게다가 형이 한다니 금상첨화지. 둘의 개성이 살아나면 관객도 즐겁지 않겠어. "

남경주가 뮤지컬의 간판 스타라면 허준호는 그 뒤를 바짝 쫓는 경쟁자. "서로 라이벌로 생각하느냐" 고 묻자 "동료지 무슨 라이벌이요" 라며 손을 젖는다.

짓궂게 파고들었다. 노래.연극.춤이 모두 요구되는 뮤지컬 배우로서 상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같은 작품에 함께 출연한 적은 많았으나 한 배역을 놓고 대결하기는 처음이기 때문.

특히 사창가를 중심으로 뉴욕의 밑바닥 인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라이프' 는 화려한 무대보다 배우들의 기량에 크게 의존하는 작품이기에 궁금증이 컸다.

남경주가 먼저 말한다. "준호의 카리스마는 따라갈 수 없다. 포주와 창녀 사이에서 나쁜 짓을 골라 하는 조조역에 딱 들어 맞는다. 무엇보다 신체 조건이 부럽다. 키가 나보다 크고 체구도 좋다. 다만 준호도 인정하듯 너무 바빠 작품에 몰입할 시간이 부족한 게 흠이다."

허준호가 이어 받는다. "형의 소리가 가장 부러워요. 뭐랄까. 노래 안에서 연기를 한다고나 할까. 노래.춤.연기 세 박자를 고루 갖춘 배우입니다. 사실 많은 한국 뮤지컬은 세 요소가 따로 노는 경우가 많거든요. "

작품으로 얘기를 돌렸다.

"무대는 언제나 도전이다.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조조는 극중 사건을 이어주는 고리 역할이다. 파렴치한 성격이 강해 배우로선 탐이 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나를 만날 것 같은 예감에 가슴이 설렌다." (남경주)

"여러 번 맡았던 역이라 어떤 색깔이 나올지 저도 궁금해요. 부드러운 형의 이미지와 강인한 저의 분위기가 어떤 결과를 빚을지는 관객이 판단하겠죠. 뉴욕이란 거대도시에서 성공을 꿈꾸다 파멸해 가는 처절한 사랑얘기가 큰 감동을 줄 것입니다." (허준호)

뮤지컬 배우의 조건을 물었다.

"음악적 감성이란 게 있죠. 노래를 잘하면 연기도 잘 해요. 뮤지컬 배우들은 흔히 대사도 노래 같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춤은 끝없는 연습이 필요하죠" 라고 남경주가 운을 떼자 허준호는 "노래는 좋은데 표현이 모자라는 배우가 많아요. 그 극에 어울리는 연기력을 더 쌓아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저의 연기생활도 이것과의 싸움이었지요" 라고 화답한다.

뮤지컬 무대를 고수해온 남경주와 달리 허준호는 드라마.영화.뮤지컬에 전방위로 활동해 가는 길이 다른 것은 아닌 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자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오해입니다. 물론 경제적 이유로 연극을 꺼리는 경향이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나 배우에겐 같은 무대죠. 탤런트다, 연극배우다 하며 구분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어요. 서로 벽을 쌓다 보면 발전이 없죠. 연극 활성화와 연기력 배양을 위해 스타급 탤런트들이 더욱 활발하게 무대에 서야 한다고 봅니다."

사생활 얘기가 나오니 허준호가 힘을 받는다.

딸 하나를 둔 아버지로서 미혼인 선배에게 결혼을 적극 권한다.

"너무 일만 하지 말고 장가를 갔으면 좋겠어. 인생이 달라져. 형이 미국유학을 떠난 97년 나는 유학을 포기하고 결혼했잖아" 라고 건드리자 남경주가 "야! 여자나 소개해 주고 말을 꺼내라. 아직은 일이 즐겁다" 고 일축한다.

친형제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무대에선 볼만한 대결이 펼쳐질 것이다. 그들의 장.단점이 고스란히 비교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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