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서벌 '쑥 세마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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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문고리 제껴버리며

닫힌 숨

숨통 트며

영혼이 낸 쪽문 열고

나오는 저 쑥순들

찬바람 마다하지 않네

가꿀 하늘 손짓하네.

쥔 손이 절굿대 쳐

돌절구 적시던 피

그 피 역사는 먹고

새 살 내긴 내는 건가

흥건한 쑥물빛 우수(雨水)

어디에 더 내리는가

- 서벌(61) '쑥 세마치' 중

삼동(三冬)을 넘기느라 허기진 백성들은 아직 얼음 박힌 땅에 새순 돋는 쑥을 캐러 들길에 나섰었다. '쑥을 뜯네, 쑥을 뜯네, 쑥이 없어 지칭개도 뜯네' -이것은 강진에 귀향살이를 하던 다산(茶山)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가난한 백성들을 두고 통곡으로 쓴 시이거니와, 서벌의 이 세마치 시조 중 두마치는 역사와 더불어 피까지 적신다. 오늘따라 쑥향기가 코끝에 아리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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