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 교육과정' 시행 한달 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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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자라나는 차세대에게 세계화.정보화 적응능력을 키워주고, 능력.적성에 맞는 '맞춤 교육' 을 제공하기 위해 올해부터 초등학교 1, 2학년에 도입된 7차 교육과정이 시행 한달을 맞았다.

하지만 7차 교육과정의 핵심인 '수준별 교육' 은 '과밀 학급' 이란 벽에 부닥쳐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시행초기 단계인 7차 교육과정 운영실태를 긴급 점검해 본다.

지난 4일 서울 은평구 Y초등학교 2학년 수학시간. 두자릿수 덧셈.뺄셈 교육을 위해 6명씩 9개의 모둠이 만들어졌다.

학생수가 53명이나 되다 보니 교사가 모둠 사이를 간신히 빠져다니며 지도한다.

각 모둠에는 두자릿수 덧셈과 뺄셈에 능숙한 학생들과, 기본 개념조차 미숙한 학생들이 뒤섞여 있다.

교사들이 방학 중 준비한 심화형.보충형 학습지도 모두에게 배포됐다.

A교사(54)는 "이런 콩나물교실에서 수준별 교육을 기대한다는 건 무리" 라고 말했다. 인근 H초등학교도 학급당 인원이 40명이지만 수업 진행은 Y초등학교와 비슷하다.

이들 두 학교의 수업을 살펴보면 공통적인 문제점으로 ▶학생들의 수준파악 미진▶학습능력 개인차 배려 미진▶수준에 맞는 교재.교구개발 미진 등이 발견된다.

학습과정을 수준별로 구분해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에 알맞은 단계부터 체계적으로 학습하게 한다는 7차 교육과정의 시행 취지가 일선 현장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학생수가 너무 많다〓서울시교육청 초등교육과 심은석(沈恩錫)장학사는 "학급당 인원이 40명이 넘는 학교들은 공통적으로 수준별 교육 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 말했다.

학생 수가 많다 보니 개개인의 수준을 세밀하게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 지난해말 현재 전국 초등학교에서 학급당 인원이 41명 이상 되는 학급은 4만1천5백6개로 전체 학급의 37.7%에 달한다.

교육부는 2003년까지 초.중학교의 학급당 인원을 35명으로 낮출 예정. 따라서 당분간 과밀 학급에 따른 수준별 교육 혼선은 계속될 전망이다.

◇ 자료가 부족하다〓새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놀이.활동을 통해 기본원리를 깨닫게 하고, 응용력을 키워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교과서만으로는 수업 진행이 불가능하다.

서울 도곡초등학교 2학년 김한기(金漢基.53)교사는 "주입식 수업을 깨려면 다양한 학습자료가 개발돼야 하는데 너무 부족하다" 고 말했다.

2학년 '슬기로운 생활' 의 경우 시청각 기자재나 컴퓨터 활용자료가 필수적이지만 일선 학교들은 예산부족 등을 이유로 이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수업을 진행하는 실정이라는 것. 각 시.도교육청들은 이번 학기 중 교과별 교육자료를 개발, 보급하기로 했다.

◇ 학교마다 여건이 다르다〓새 교육과정의 또다른 특징은 학교별 교과운영권을 더욱 보장하고, 재량 활동시간을 늘린 점이다. 학교 시설 여건이 열악해 컴퓨터.영어 등 교육을 강화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학교들이 많다.

부산 남성초등학교 2학년 최진석(崔珍錫.45)교사는 "학기초 교과운영 계획을 세울 때 학교 여건이나 학생.학부모의 요구사항을 면밀히 조사해 반영하는 사전준비가 필수적" 이라고 지적했다.

강홍준.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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