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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뿔' 잡으려다 '소' 잡아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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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20일 경기도 파주의 한 농장에서 발생한 괴질이 '구제역' 일 가능성이 커지면서 전국이 떠들썩하다.

축사를 불태우고 인근지역의 멀쩡한 가축마저 강제 도살하는 등 군 작전을 방불케 하는 방역당국의 모습을 통해 배어나오는 긴장감은 가위 구제역이 가져다주는 파괴력을 짐작케하고 있다.

벌써부터 소비자들이 소.돼지고기 먹는 것을 기피하면서 가격이 폭락하고 소비감소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일본.대만은 재빠르게 한국산 축산물에 대한 통관을 보류하고 나서 수출길마저 막히고 있다.

아직 최종 검사결과가 나오지 않아 '구제역' 이라는 확진이 내려지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축산업계 붕괴' '축산농가 연쇄 도산' 등의 표현까지 등장하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이런 국내 분위기는 지난 12일 미야자키현에서 한국보다 먼저 '의사 구제역' 이 발생했던 일본에 비해 너무나 대조적이다. 일본 언론들은 당시 "확인될 때까지는 가급적 신중하게 대처한다" 는 입장 아래 발병사실을 일제히 1단기사로 작게 보도했으며, 지금도 냉정하게 사태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굳이 일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도 구제역 파문에 냉정히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관계자는 "너무 민감한 반응만 보이는 것이 더 큰 문제" 라며 "문제의 심각성만을 강조하기보다 감염경로를 밝히고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수립이 절실하다" 고 말했다.

한 수의사는 "증상을 보인 소는 아직까지 15마리에 불과하고, 추가적인 확산조짐이 없는 상태에서 우왕좌왕하게 되면 오히려 축산기반만 더 무너진다" 며 정부의 신중한 대응을 요구했다.

황우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구제역이 가축에게 무서운 질병이기는 하지만 사람들까지 고기 먹는 것을 기피하면서 동요할 필요는 없다" 며 성급한 우리 사회의 반응을 지적했다.

'구제역' 파문은 국내 축산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위기를 국내 축산산업의 취약한 기반을 바로 잡고 방역체계를 재검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소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잡고 만 '교각살우(矯角殺牛)' 라는 옛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차분한 대응과 체계적인 조치를 기대해본다.

홍병기 기자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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