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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 문화

에이! 노래나 부를 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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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할렐루야!" 승용차 안에서 전화를 받다가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신앙심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내 매니저가 'KBS 모스크바 열린음악회'의 무기 연기를 알려와 얼결에 탄성을 내지르게 된 거다. 안 그랬다면 나는 9월 9일 대망의 광주 비엔날레 프레스 오픈에 참석하지 못하고 곧장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타야 할 판이었다. 명색이 비엔날레 참여작가 겸 홍보대사인데 결정적인 오픈행사 날 딴 데서 딴 짓을 할 뻔했다는 얘기다.

내가 '할렐루야' 탄성까지 올리게 된 건 대충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비엔날레 프레스 오픈에 참석할 수 있게 된 것이고, 둘째는 거기에 참석함으로써 나의 미술적 역량을 만방에 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두고 보라! 나는 각국에서 날아온 내외신 미술기자.미술평론가.미술경영자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내 작품을 직접 보여주고 그들에게서 예리한 질문을 받고 나의 명쾌한 답변으로 그들을 놀라 자빠지게 만든다. 아!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려오는 꿈 같은 장면 아닌가.

하마터면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를 놓칠 뻔했는데 뜻하지 않은 인질 테러사건 덕분(?)에 모스크바 대신 광주로 내려갈 수 있게 된 것은 정녕 아이러니다.

나는 이날을 대비해 지난 여름 더운지 추운지도 모르고 혼신을 다해 작품 제작에 몰두했다. '노래를 이처럼 열심히 불렀다면 진작에 세계적인 가수가 됐을 텐데'를 몇 번이고 외웠다. 그만큼 미술에 대한 나의 애정과 야망은 하늘을 찔렀다.

예술에도 작전이 필요한 법. 나는 2004년 광주 비엔날레의 주제인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에서 크게 엇갈리지 않도록 작품계획을 세우는 한편 주최 측에서 세계 최초로 도입한 참여관객제에도 발을 맞추어 기본계획을 짰다. 우선 나는 내 작품 속에서 비엔날레의 주제에 맞는 소재를 골라냈다. 단연 화투작업이었다. 나는 화투를 그리는 화가로 평판이 나 있지 않은가. 그것은 먼지 한 톨처럼 덧없어 보이는 고스톱 한 판에서 물 한 방울 같은 작은 위로를 건진다는 의미다. 어떤 경우에도 예술은 새로워야 한다. 나는 기존의 화투그림을 이번엔 입체조각 형태로 깎아 세웠다. 거기다가 내 임의로 참여관객 12명의 인물조각까지 추가했다. 화투의 12패에 맞춘 숫자였다. 10명의 기라성 같은 화가와 두명의 신비스러운 인물을 끌어들인 것이다. 현대미술의 대부격인 피카소를 비롯해 이중섭.박수근.김환기.권진규.박생광 그리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백남준, 병석에 누워 있는 천경자, 미국의 성조기를 맨 처음 그린 재스퍼 존스, 내가 닮고 싶은 화가 필립 가스통 이 10명에 두명이 더 추가된다. 사상가 한 분과 시인 한 분이다. 이 부분이 내 작품의 핵심이다. 단군을 치켜세우는 일에 평생을 바쳤던 나철(羅喆)과 '날개' '오감도'를 쓴 시인 이상(李箱)이 그들이다. 하늘을 찌르는 나의 야망이란 바로 이들 두 양반을 내 미술작품을 통해 온 천하에 알리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유교를 신봉하든, 불교를 섬기든, 기독교를 믿든 우리는 어디까지나 빼도 박도 못하는 단군의 후예임을 늘 알자는 것이고, 또 하나 우리의 시인 이상이 동방.서방에서 잘나가는 보들레르.랭보.에드거 앨런 포보다 여러 수 위라는 사실을 알아두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2004 광주 비엔날레 프레스 오픈 준비를 완벽하게 끝냈다. 완전무장을 갖춘 셈이다. 거기서 검증만 받고 검증에서 통과만 되면 나는 더 이상 무자격자 아웃사이더가 아니다. 나는 단번에 미술세계의 신분증을 취득하게 된다.

드디어 9월 9일 프레스 오픈의 날 200명 가까운 내외신기자.평론가.미술경영인들 앞에 섰다. 나는 일부러 둥그런 후광을 머리 위에 얹은 나철 인물상과 금빛 관을 머리 위에 얹은 시인 이상 인물상 사이에 서 있었다. 그 후 나흘이 지났다. 그걸 누가 믿겠는가. 나는 지금까지 "나철이 누굽니까. 이상은 왜 거기 서 있습니까?"라는 멋진 질문을 단 한 번도 못 받아봤다. 시쳇말로 쪽만 팔리고 말았다. 에이! 모스크바에 가서 노래나 부르는 건데.

조영남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