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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덮개 잘 살피고, 뚜껑은 직접 돌려 따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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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호 28면

국세청 기술연구소가 가짜 양주 근절을 위해 시범사업 중인 무선인식 전자태그를 활용한 양주 진품 여부 확인 서비스를 시연하고 있다. [중앙포토]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수송동의 국세청 소비세과. 황대철 주세 담당 사무관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 단말기를 꺼냈다. 이어 명함 반쪽 정도 크기의 ‘동글(dongle)’이란 컴퓨터 장치를 휴대전화에 연결했다. 잠시 후 휴대전화 화면에 ‘국세청 시범사업 일환으로 진위 여부와 유통이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란 글이 올라왔다. ‘확인’을 누른 뒤 ‘진위 여부 조회’를 선택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책상 위의 양주병에 가까이 갖다 댔다. 화면에는 ‘진품입니다’란 메시지와 함께 ‘윈저 12년산, 500㎖, 유흥음식점용, 수입’이란 제품 이력이 나타났다.

국세청이 말하는 가짜 양주 구별법

황 사무관은 “가짜 양주를 뿌리 뽑기 위해 무선인식 전자태그(RFID)를 병뚜껑에 붙여 진품을 확인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는 시범사업으로 서울 강남구에 있는 유흥주점(룸살롱) 1045곳에 RFID 인식용 동글을 나눠주고, 윈저·임페리얼·스카치블루 브랜드의 양주 200만 병에 RFID를 붙여 출고하도록 했다”며 “손님이 업소에 동글을 달라고 한 뒤 자기 휴대전화에 연결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말 송년회에 참석해 양주를 마시며 혹시 가짜가 아닌지 찜찜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국은 연간 1조원어치를 마시는 세계 9위의 양주 소비국이지만 소비자의 80% 이상이 가짜 양주를 의심할 정도로 위조품 불안에 시달린다. 만취 상태에서 호객꾼에게 이끌려 갔다가 가짜 양주로 바가지를 쓰고 다음 날 머리가 아파 고생하거나 심지어 급성알코올중독증으로 사망하는 사고도 벌어진다.

국세청 기술연구소의 김용준 연구관은 “주류 업계의 위조 방지 기술이 크게 좋아져 최근 팔리는 양주 가운데 가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그럼에도 가짜가 걱정되는 사람은 병뚜껑을 면밀히 살펴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관은 “가짜 양주를 만들면 반드시 병뚜껑에 흔적이 남는다”며 “업소 종업원에게 맡기지 말고 귀찮더라도 손님이 뚜껑을 확인한 뒤 직접 병을 따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비닐덮개 찢어져 있으면 가짜
국세청과 주류 업계에 따르면 가짜 양주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가짜 양주를 제조하거나 ▶업소에서 자체적으로 빈 병에 싸구려 술이나 다른 손님이 남긴 술을 집어넣는 것이다. 이 중 업소에서 만든 가짜 양주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금세 알 수 있다. 병뚜껑을 감싸는 비닐덮개가 진위 여부를 가리는 핵심 열쇠다. 가짜라면 칼 같은 예리한 도구로 살짝 잘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업원은 술을 가져오기 무섭게 재빠른 동작으로 뚜껑을 딴다. 손님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일단 뚜껑을 개봉한 뒤에는 육안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술을 먹지 않으려면 손님이 직접 병을 따는 수밖에 없다. 만일 비닐덮개가 온전하지 않다면 교환을 요구해야 한다.

업소에서 빈 병에 가짜 술을 부을 때는 주사기나 고무장갑·이쑤시개 등을 사용한다. 주사기를 쓰면 병 입구에 작은 구멍이 생기기 쉽다. 그러면 가짜 티가 나기 때문에 요즘에는 이 방법을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고무장갑을 병 입구에 덮어씌워 조금씩 압력을 주면서 술을 붓는 수법이 개발됐다. 이쑤시개는 위조방지용 추를 들어올리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

윈저를 수입·판매하는 디아지오코리아의 김영진 부장은 “가짜 양주를 피하려면 속칭 ‘삐끼’로 불리는 호객꾼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소개하는 업소 중에는 불법 영업을 하는 곳이 꽤 있다”며 “정상 업소에선 가짜 양주가 거의 사라졌지만 불법 업소는 아직도 가짜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장에서 기술자들이 만든 가짜 양주라도 주류업체 고유의 위조방지 장치까지 그대로 따라 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즐겨 먹는 술의 위조방지 장치를 기억하는 것이 좋다. 윈저는 ‘체커’라는 위조방지용 추를 쓴다. 임페리얼은 병뚜껑에 세 가지 특수 장치를 설치한 ‘트리플 키퍼’ 방식이다. 스카치블루는 뚜껑에 이중 스티커를 붙였다.

강남 유흥주점 1045곳에 인식기 시범 배치
가짜 양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국세청이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RFID 전자태그다. RFID는 현재 제품 관리에 널리 쓰는 바코드보다 훨씬 앞선 기술이다. 위조가 비교적 쉬운 바코드와 달리 무선 전파를 쓰는 RFID는 위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바코드는 같은 종류의 물건엔 동일한 번호를 부여하지만 RFID는 같은 종류라도 물건마다 제각각의 고유번호를 입력할 수 있다. RFID를 활용하면 술이 공장에서 나와 도매상을 거쳐 업소·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유통의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

양주병에 붙은 RFID를 인식기로 읽으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 가짜 술은 RFID가 아예 없거나 엉뚱한 것이 붙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술에 붙은 RFID는 뚜껑을 여는 순간 파손되기 때문에 재사용을 할 수 없다. 현재는 서울 강남구의 유흥주점에서만 RFID를 붙인 양주가 판매되지만 내년에는 서울 전 지역, 2012년에는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 국세청의 계획이다.

RFID가 아무리 첨단 기술이라도 동글이란 인식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현재는 RFID를 적용하는 곳이라도 업소별로 1개 정도만 인식기가 보급돼 있다. 또 일부 구형 휴대전화 단말기에는 인식기가 잘 연결되지 않는다. 국세청 황대철 사무관은 “소비자 이용을 쉽게 하기 위해 테이블마다 안내문을 놓고 인식기의 호환성도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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