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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 로봇’에게는 없는 것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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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호 34면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영양 만점의 맛있는 음식? 부드럽고 편한 옷? 깨끗하고 따스한 잠자리? 이들 모두 아기가 자람에 있어 중요한 환경 요소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갖춰져 있어도 한 가지 요소가 결핍되면 아기는 제대로 자라나지 못한다. 바로 아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의 존재다.

아기는 태어나 자신의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때까지 아기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아기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래서 아기에게는 세상과 맞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돌봐 줄 보호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개는 엄마가 그 대상이 되지만 반드시 엄마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절대적 보호자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아기는 세상이 반드시 팍팍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고, 설사 조금 다치고 깨지더라도 지친 어깨를 감싸 줄 위안처가 있음을 깨달으며 안정감을 얻게 된다. 아무리 청결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자라더라도 품에 안고 얼러 주지 않은 아이는 쉽게 질병에 걸리고 회복도 느리며 살아날 가능성도 작다. 요행히 질병을 이기고 자라나더라도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분노와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

이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랑과 애착관계 형성에 대해 연구했던 해리 할로 박사는 갓 태어난 원숭이를 어미로부터 떼어 내 다양한 인공포육 장치에서 길러 보는 실험을 통해 영양과 위생이 완벽하게 제공되는 환경은 어미의 부재를 전혀 상쇄시키지 못함을 밝혀낸 바 있다.

최근 농진청에서 ‘송아지 유모(Calf U-MO) 로봇’을 만들었다는 기사를 봤다. 소는 인간처럼 약 280일간의 임신 기간을 거친 뒤 새끼를 낳고, 인간처럼 젖을 먹여 키우는 젖먹이 동물이다. 보통 송아지의 수유 기간은 5~6개월 정도이지만 현대화된 가축 사육 시스템은 송아지에게 엄마 품을 오래 허락하지 않는다. 젖소의 경우 보통 생후 3일이 지나면 어미에게서 떼어 내 이유기에 이를 때까지 인공포유를 실시한다. 갓 태어난 아기가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이 작아 수시로 젖을 찾듯, 갓 태어난 송아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람 손이 달리는 농가에서 송아지가 젖을 찾을 때마다 포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보통은 1일 2회 시간을 정해 놓고 포유하곤 한다. 원하는 것에 비해 포유 횟수가 적다 보니 허기가 진 송아지는 허겁지겁 먹다가 과식으로 인한 급체나 장염을 앓는 경우가 잦고, 이는 송아지의 성장 지연이나 폐사로 이어지곤 한다. 송아지 유모 로봇은 바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유 저장 탱크를 갖고 있어 송아지가 배고픔을 느끼게 되면 언제든 수유가 가능하고 송아지의 체중, 건강 상태, 포유 횟수 등을 측정해 적당한 포유량과 포유 횟수를 결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번 빨 때마다 정량만 나오도록 설계돼 있어 과식을 막아 주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농진청에서는 이 ‘송아지 유모 로봇’을 사용하게 되면 기존의 사육 방식에 비해 송아지의 성장률은 30% 증가하고 폐사율은 30% 감소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송아지들의 건강을 개선시키고 폐사율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송아지 유모 로봇의 개발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애초에 송아지들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은 너무 이른 시기에 젖먹이를 어미와 억지로 떼어 놓아서가 아니었을까. 혹 점점 현대화되고 첨단화되는 가축 사육 시스템이 과거에 비해 사육 환경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가축들을 생명이 아닌 관리해야 하는 하나의 기계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억지로 어미와 떨어진 송아지에게 금속으로 만들어진 자동 우유 제공기는 과연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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