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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잡되 나머지는 통 크게 수용’그래서 중국은 거대 전략에 강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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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호 09면

베이징 자금성 앞 천안문 부근에서 바라본 창안제 야경. 동서 길이 26.7㎞, 폭 50m로 세계에서 가장 길고 넓은 도로로 꼽힌다.

베이징(北京)의 과거 황궁인 자금성(紫禁城)이 남북으로 이어지는 풍수상의 용맥(龍脈)을 살린 축선에 지어졌다면 그 앞을 지나는 창안제(長安街)는 동서의 축선을 이룬다. 폭 50m, 전체 길이 26.7㎞로 세계에서 가장 길고 넓은 도로로 꼽힌다.

유광종 기자의 키워드로 읽는 중국 문화-축선(軸線)<7ㆍ끝>

베이징을 동서로 가르는 이 창안제는 자금성이 지어지던 무렵인 명(明) 영락(永樂) 4~18년(1406~1420)에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도로인 셈이다.
이 도로는 특징이 아주 많다. 중심부에 들어서면 좌회전을 할 수 있는 곳이 매우 드물다. 중심 구간에 들어서면 옆으로 새지 못하고 곧장 직진만 할 수 있다.

통제도 많다. 전국인민대표대회나 공산당 당대회 등 주요 정치 행사가 열리면 왕복 10차선 도로의 4개 차로는 일반인 ‘통행 불가’다. 대회에 참석하는 각 지역의 대표나 정부 기관 및 취재 차량의 통행을 위해서다. 교통 경찰이 곳곳에 자리 잡고서 치밀하게 차량의 흐름을 관리한다. 국가원수급의 내외빈이 지날 때면 통제는 더욱 크게 강화되며 일반 차량의 접근이 한동안 막힌다.

비효율의 극치라고 할 수도 있다. 그 넓은 도로가 수시로 막히고 옆으로 새는 길을 쉽게 찾을 수도 없다. 중국이 그 화려한 경제성장의 이면에서는 치밀하면서도 강력한 통제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느낌을 받는 곳이 이 창안제의 10차선 도로다.

앞에서는 여러 축선을 얘기했다. 진시황이 만들어 사용한 뒤 1000여 년의 세월 동안 중국 최고 권력을 상징했던 옥새(玉璽), 중원의 패권을 의미했던 사슴, 황제의 권력을 표상하는 데 동원했던 용(龍), 청동으로 만들어 국가의 권력을 자랑했던 세 발 솥(鼎)…. 불가(佛家)에서는 목면으로 만든 가사(袈裟)를 통해 선종(禪宗)의 법맥(法脈)을 표시했고, 대만의 장제스(蔣介石)는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패퇴하면서도 갖은 노력을 동원해 가져간 국보급 문화재로 자신의 정통성을 유지하려 했다. 앞 장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민간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건축에서 드러나는 이 축선의 개념이 권력의 다툼이 벌어지는 정치의 장, 정통성의 시비가 일어나는 종교의 세계, 일반인의 생활 영역에서 고루 나타나고 있다. 축선은 우선적으로 법통(法統)과 정통(正統)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아울러 원칙과 핵심의 뜻도 담는다.

앞서 축선이라는 코드를 처음 설명하면서 꺼낸 스토리가 조선 세종의 즉위교서에 등장하는 ‘강거목장(綱擧目張)’이다. 그물의 벼리를 들면 그 세부를 구성하는 그물코는 자연스레 펼쳐진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벼리가 곧 축선의 개념이다. 축선을 제대로 형성하고 있으면 나머지 것은 잘 정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축선의 형성은 그래서 중국인의 사유행위 가운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는 별칭의 덩샤오핑(鄧小平)이 자주 썼던 말이 있다. “제대로 서 있으라(站穩脚)”는 말이다. 특히 자신이 추진했던 개혁·개방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한 발언 중에는 “전족을 한 여성처럼 비틀거리지 말고 발을 딛고 제대로 서 있어라”는 내용이 있다.

중국인들은 사물의 변화를 중시한다. 사물과 현상이 여러 요인에 의해 변화를 맞는 상황을 열심히 체크한다.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말을 잃어서 슬퍼할 것도 아니고, 아들이 말을 타다 다리가 부러진 것도 슬퍼할 일이 아니다. 잃었던 말은 암컷 한 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고, 아들은 부러진 다리 덕분에 전쟁에 끌려나가는 것을 피했다.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원칙적인 제 입장을 잘 유지해 변화하는 환경에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덩샤오핑의 “제대로 서 있으라”는 말 역시 그 뜻이다. 제 안의 축선을 제대로 유지하면서 사물과 상황의 변화에 대응하라는 주문이다. 원칙을 함부로 허물면서 상황의 변화에 이리저리 쫓아다니다가 제 중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는 중국 현대 정치에서도 잘 드러난다. 역대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의 통치 논리는 공산당 당헌(黨憲)에 올라 있는 ‘축선’이다. 마오쩌둥(毛澤東) 사상, 덩샤오핑 이론, 장쩌민(江澤民)의 ‘삼개대표(三個代表)’ 이론, 후진타오(胡錦濤)의 ‘과학발전관(科學發展觀)’ 등이 그것이다. 이들 역대 지도자들의 통치 철학은 당의 흔들리지 않는 벼리(綱領)로 작용하면서 중국의 발전과 성장을 이루는 축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자금성 앞 천안문(天安門)에서 남북으로 이어지는 과거의 축선이 왕조의 정통성을 내세우는 표상이었다면 중국 공산당 당헌에 실린 역대 지도자들의 통치 철학은 현대 중국의 새 축선에 해당한다. 동서로 뻗은 ‘통제형 축선’인 창안제는 현대 중국 공산당의 통치 철학이 어떤 분위기를 담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축선의 사고’는 정통성과 원칙, 중심(中心)을 내세우면서 나머지 부분을 크게 수렴하고 담는다. 전체와 부분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아주 오래된 중국식 사고다. 세 발 솥과 사슴, 그리고 용을 내세운 중국의 역대 통치자들이 중국이라는 큰 줄기를 형성하면서 광대한 영토의 통치권을 유지해 온 것처럼 중국인들은 늘 축선에서 전체의 가닥을 잡아나간다.

세계 경제의 위기 상황에서도 막대한 외환보유고로 튼튼한 장벽을 구축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흔들림 없는 원칙으로 정치와 경제 발전상의 불균형을 극복한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이냐’에 대한 물음에 스스로 대답한 결과다. 돈줄이라는 축선, 경제 발전이 정치적 성장에 앞선다는 현실 감각의 축선을 유지한 성과다. 대내외 정책 수립·집행에 있어서 큰 전략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중국의 특성 또한 이 ‘축선의 사고’와 맞물려 있다.


중앙일보 국제부·정치부·사회부 기자를 거쳐 2002년부터 5년 동안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한 중국통이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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