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스있는 식탁] 4. 기다림의 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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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마이애미시의 한 허름한 이탈리아 전통 레스토랑 앞에는 뜨거운 날씨에도 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다.

백발의 노부부로부터 젊은이들까지 막 구워낸 뜨거운 마늘 빵과 고무줄 같은 치즈 범벅의 피자, 라사냐를 먹기 위해 건물을 휘감아 가며 줄을 선다.

우리네 성격에는 덥고 짜증나 안 먹고 말텐데 그네들은 이야기꽃을 피워가며 평화롭게 기다린다. 기다림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멋진 테이블매너의 하나다.

미국에서는 일반 피자 하우스 같은 곳까지도 레스토랑 실내 초입에 "Please be waited(기다려 주십시오)"라는 안내문구를 준비해 놓고 있다.

아무리 급해도 이 팻말 뒤에서 직원이 안내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두 눈을 껌벅이며 직원을 무작정 기다리는 외국인들을 보면 가여운 생각까지 들지만, 이는 정작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이 규칙을 어기는 순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손님' 으로 대접받거나 파트너와 함께 자리를 옮겨 다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내를 기웃거린다든지 제 마음대로 성큼 들어가서는 안된다. 초대받은 자리라면 이름이 씌어진 지정석이나 주최자가 안내하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주최자가 식사기도를 하고 있다면 포크에 음식을 담아 입으로 가져가서는 안된다. 작은 모임에서는 모두에게 음식이 돌아간 후 주최자가 식사를 시작할 때까지 기다린다.

큰 모임에서는 음식을 받는 대로 식기 전에 드시라고 주최자가 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일행 중 최소한 두세 명이 음식을 받은 후 시작해야 혼자만 먹는 '우스꽝스런' 신세를 면할 수 있다.

상대방과 식사 속도를 맞추고, 코스마다 천천히 먹는다. 일행과 다 함께 코스를 마쳐야만 다음 코스가 나온다. 먼저 먹고 기다리거나 혹은 늦게 마쳐서 상대방을 기다리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즐거운 대화와 함께 한 입당 열번씩 씹어 삼키면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한다. 말을 할 때는 반드시 음식물을 삼킨 후에 한다는 것도 잊지 말 것.

홍성민 <서울힐튼호텔 서비스 매너 스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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