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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2009한국바둑리그] 속기 대국 헤매던 유창혁 장고로 붙으니 ‘일지매 본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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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유창혁 9단(오른쪽)이 이영구 7단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며 팀에 승리를 안겨줬다.

유창혁 9단이 중요한 고비에서 한 팔 거들 줄 알았다. 올해 스타도 많았지만 챔피언결정전 1차전의 히어로는 단연 영남일보의 유창혁이었다. 유창혁은 정규시즌에서 1승3패로 부진했다. 팀의 주장인 박영훈 9단이 8승4패, 3지명인 김지석 6단이 무려 10승2패를 기록하며 개인 최고 성적을 거둔 것에 비하면 유창혁은 정말 이름 값의 절반도 못했다. 그는 농구로 치면 ‘식스맨’으로 거의 벤치만 지킨 셈이다. “이제 속기는 힘들다.” 고 유창혁은 고백하곤 했다. 66년생으로 겨우 40줄에 들어섰는데 벌써 안 되는 것인가. 하기야 올해 한국리그는 온통 신예들 잔치였다.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은 6전6패를 당하며 팀(하이트 진로)을 수렁 속으로 몰아넣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으랴.

하지만 장고대국이라면 어떨까. 영남일보의 최규병 감독은 유창혁이 장고바둑이라면(사실은 이게 정상적인 바둑인데) 아직 누구하고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김지석·박영훈의 원투 펀치가 2승을 챙긴 뒤 유창혁이 한게임의 에이스 이영구 7단을 격파해 3 대 1 승리를 이끌어낸 것이다. ‘일지매’란 별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창혁이 결정적인 순간 이름값을 해낸 것이다.

2차전의 히어로는 홍성지 6단일까, 아니면 한웅규 초단일까. 한게임은 2차전에서 영남일보를 3대 1로 꺾으며 1차전의 패배를 그대로 갚아줬다. 윤준상이 김지석에게 패했지만 홍성지가 박영훈이란 대어를 잡은 것이 컸다. 이영구가 강유택을 제쳐 2대 1이 된 상황에서 팀의 막내 한웅규가 장고바둑에서 유창혁을 꺾어 마무리를 했다. 큰 승부를 수 없이 치러 본 유창혁은 또 일을 낼 뻔했으나 이번엔 약점인 끝내기에서 발목이 잡혀 1집 반을 졌다.

한게임은 5명의 전력이 거의 비슷한 독특한 팀이다. 정규시즌 성적을 보면 (주장) 윤준상 7승5패, 이영구 9승3패, 홍성지 6승6패, 김주호 6승4패, 한웅규 5승5패다. 한게임의 차민수 감독은 이 강점이 결국 말을 할 것이라며 최종전의 승리를 낙관하고 있다. 하지만 영남일보 에이스 박영훈과 김지석 중 한 명을 꺾지 못하면 곧장 위기를 맞는다는 것도 인정한다. 영남일보는 박영훈·김지석을 또다시 앞장세울 가능성이 높은데 이 둘에게 연패하면 사기도 떨어져 버린다. 그 상태에서 강유택·유창혁·김형우를 모조리 꺾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KB국민은행 2009한국바둑리그의 대미를 장식할 최종전은 다음 달 5, 6일 열린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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