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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 대만의 미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지난해 9월 21일 대만 전역을 뒤흔든 대지진은 파괴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3.18 선거의 대지진' 은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는 굉음이다. 그러나 陳은 39%의 득표로 당선됐으며 그가 속한 민진당은 국회에서 소수당이다. 陳당선자가 이끌 대만의 과제를 점검해본다.

◇ 지배 엘리트의 대개편〓누구나 세포까지 뒤바꿀 대변화가 시작될 것을 예감하고 있다. 변화의 출발은 국민당이다. 대만의 국민당 조직은 약 1만2천개. 지구당과 각종 후원회는 물론 국민당이 경영하는 수많은 영리단체까지 포함한 숫자다.

대만 최대 일간지 중국시보(中國時報)는 "국민당의 이름으로 먹고 살아온 대만인은 최소 1천만명" 이라고 말했다. 전 국민의 절반이 국민당과 직간접의 인연을 맺었다는 분석이다.

15만5천여명의 대만 공무원 중 40% 정도가 '대를 이어' 공무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적법하고 공개적인 절차를 거쳐 공무원으로 입신한 게 아니라 부친의 후광이나 집안의 연고, '관시(關係.인간관계)' 를 통해 관리가 됐다는 얘기다. 새 정권이 이들의 처리를 두고 얼마나 원칙을 고수하고 얼마나 타협해갈지 주목된다.

◇ 경제의 탈국민당화〓류타이잉(劉泰英) 국민당 재정위원장이 최근 공개한 국민당의 공식 자산은 약 2천억 신타이비(8조원). 그러나 국민당의 자산은 최소 1조 신타이비는 될 것이라는 게 대만 정계의 추산이다. 이 정도면 대만 경제를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규모다.

대만 최대 재벌인 포모사 플라스틱의 장훙신(張宏信)조사분석실장은 "만일 국민당 직영 기업이 모두 해체되거나 몰락할 경우, 혹은 민간에 매각되거나 신탁공사로 위탁될 경우 그 경제적 파장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고 전망했다. 이럴 경우 대만 경제를 처음부터 다시 조립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만큼 국민당의 '자산' 은 방대하다.

◇ 과거.부패청산〓신정권 출범 이후 예상되는 '사정(司正)정국' 도 주목거리다. 황토에서 일어나 50년 정권을 들어낸 '들판 정권' 이 과거청산이라는 케치프레이즈를 내걸 경우 그 바람은 대단할 것이 틀림없다. 반세기에 걸쳐 국민당이 온갖 비리를 저질러 왔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걸면 걸릴 데' 는 부지기수다.

그러나 50년 집권 국민당은 이번 패배를 계기로 더욱 단단하게 뭉칠 가능성이 크다. "정권교체 최대의 수혜자는 국민당" 이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국민당에서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쑹추위(宋楚瑜)후보는 19일 낙선이 확정된 직후 "제3세력을 모아 신당을 만들겠다" 고 선언했다. 宋이 언급한 '제3세력' 의 정의는 모호하다. 그러나 '국민당이 아닌 국민당' 을 만들겠다는 의도인 것만은 분명하다. 옷을 바꿔입은 기득권 세력들의 반발을 陳당선자가 얼마나 요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해묵은 지역감정〓리덩후이(李登輝)총통은 비록 내성인이었지만 국민당 정권 자체가 '외성인 정권' 이었다. 따라서 陳총통 취임을 '내성인에 의한 대만통치' 의 출발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럴 경우 여전히 돈과 조직을 쥐고 있는 외성인들과 내성인들의 갈등도 예상된다. 그래서 陳당선자는 최후 유세일인 17일 "만일 내가 당선된다면 당직을 초월한 국정운영을 위해 민진당 상무위원직을 사직하겠다" 고 선언했다.

뿐만 아니라 대만 최초의 노벨상(화학부문) 수상자인 리위안저(李遠哲)중앙연구원장을 조장으로 하는 국정자문소조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민진당 세력은 물론 국민당의 원로들도 대거 초빙됐다. 이른바 '옛 세력 달래기' 인 셈이다.

◇ 양안 경제교류〓양안간에는 두 가지 언어가 있다. 하나는 '통일' 이라는 언어고, 다른 하나는 '경제' 라는 화법이다.

이 두 언어는 언제나 따로 놀았다. 정치가 얼어붙어도, 대만해협에 미사일이 날아다녀도, 법으로 양안간 접촉을 제한해도 양안간 경제교류는 언제나 살아 움직였다.

이미 선전(深□).둥관(東菅) 등 광둥(廣東)성 지방을 중심으로 '대만 공화국' 이 건설 중이다. 40만명 이상의 기업인과 그 가족들이 마을을, 도시를 이루며 '독립된 나라' 를 이루고 있다.

양안간 경제교류는 신정권 출범으로 한 차원 승격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양안간 투자금액은 건당 5백만달러 이하로 엄격하게 제한돼 왔다. 하이테크 분야나 군사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도 '절대 금지' 였다.

그러나 이 모든 빗장이 풀릴 전망이다. 대만인들은 얼마든지 돈을 들고 나가, 어디든지 돈을 투자할 수 있게 됐다. 陳당선자가 누차 공약했던 사항들이기 때문이다.

타이베이〓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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