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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아파트 조망권 기준 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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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자기 집에서 주변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권리인 이른바 '조망권'에 대한 법적 인정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법원은 그동안 조망권을 독자적인 권리로 보지 않고, 일조권에 속한 부수적 권리로 제한해 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13일 일조권이 침해되지 않더라도 주변 경관의 가치가 크다면 조망권을 독립된 권리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3부(주심 윤재식 대법관)는 서울 구로구 고척동 주민 고모씨 등이 "조망권을 침해당했다"며 ㈜대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조망권을 인정했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토지나 건물 소유자가 종전부터 향유하고 있던 경관이나 조망이 하나의 생활이익으로서 가치를 갖고 있다고 인정된다면 법적인 보호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조망 이익은 특정 장소가 외부를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조망 이익은 경관의 내용, 피해건물과 가해건물의 입지, 조망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소송을 낸 주민들의 아파트 주위에 경관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 조망이익을 침해당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 전망이 나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도 5층짜리 아파트 때문에 조망권이 좋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대우는 1995년 고척동에 기존 5층짜리 아파트를 허물고, 16~21층짜리 아파트 13동을 건립했다. 이후 아파트 북쪽 저지대에 살던 원고들은 조망권 침해 등을 이유로 소송을 냈다.

이에 앞서 서울고법 민사23부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 리바뷰아파트 주민 19명이 한강 조망권 침해를 주장하며 LG건설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한강 조망권의 법적 가치를 인정하고, 아파트 시가하락분과 위자료 등 총 4억3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한강 경관은 미적.정신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문화적.경제적 측면에서 가치가 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프리미엄이 형성된다"며 "주택의 장소적 가치가 조망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면 법적 보호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이 조망권의 인정 범위를 크게 확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적으로 조망권을 인정받기 위해선 건물 신축으로 인한 그 피해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이다.

이승태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은 일조권이 침해되지 않았어도 주변 경관의 가치가 크고, 막대한 재산상의 손해를 봤을 경우에는 조망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그러나 "주변에 빼어난 경관이 없는 일반 도심지역에선 조망권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재식.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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