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 - '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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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정록(1964~ ) '의자' 부분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중략)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왜 한 말씀이 아니고 '소식'인가?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인다는 말. 의자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시인이 상상력으로 본 의자다. 때묻은 일상적 관습으로는 이런 의자가 보이지 않는다. 상상력이 고갈되면 시인은 설 자리를 잃는다. 불교에 이런 인사법이 있다. 자네 한 소식 가지고 왔는가?

송수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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