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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씨 무료이발봉사 눈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지난 14일 오후 광주시 남구 광주공원 시민회관 앞. 노인들의 헝클어진 머리결을 어루만지며 쉴새 없이 가위질을 해대는 사람이 눈에 띈다.

1988년부터 케케한 '노인 냄새' 가 풍기는 할아버지들에게 13년간 무료로 머리를 깎아 주고 있는 박진수(朴鎭洙.46)씨. 朴씨는 이곳에서 '사랑의 가위손' 으로 통한다.

朴씨는 매주 정기 휴일인 화요일에 노인들의 머리를 단장해 주고 있다. 한번 나오면 20~30명 정도였으니 지금까지 줄잡아 4천여명의 머리를 깎은 셈이다.

朴씨는 건성으로 머리만 자르지 않는다. 머리를 감지 않아 때가 굳어 생긴 곪은 자리엔 머리카락을 들추고 간단한 소독도 해준다.

이 공원은 朴씨가 오는 날이면 잔칫날로 변한다. 막걸리 한 상자와 부인 李건자(38)씨가 준비해준 열무김치 안주가 전부이지만 노인들은 이를 마시며 머리 깎는 순서를 기다린다.

중간중간에 그는 걸출한 입담과 노래 실력을 보여 노인들의 시름을 덜어준다. 82년 독집 음반 '추억속의 연인' 을 히트시키기도 했지만 "딴따라는 굶어 죽는다" 는 선친의 만류 때문에 가수의 길을 포기했다.

98년 12월 초 자신이 운영하는 이발소에 화재가 나 맨 몸으로 거리에 나 앉았을 때에도 이발봉사는 계속했다.

편지 봉투에 쌀을 담고 장록속 깊이 넣어 두었던 양말을 들고 찾아오는 할아버지들 때문이었다.

"덕(德)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는 말을 남기고 할아버지들이 다 비운 막걸리 빈그릇과 이발도구를 오토바이에 싣고 집으로 향하는 朴씨의 뒷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광주〓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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