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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대선 현지 르포] 몸달은 與 "돈 뿌려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국민당이 15일 주석단 고문회의를 소집했다. 공식 직제에 없는 비상 모임이다. 국민당 핵심간부는 물론 국민당의 '진짜 힘' 이랄 수 있는 외곽 지원단체까지 모두 참석했다. 돈을 쥔 국민당 후원세력들이 정권유지를 지나치게 낙관했다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이날 회의의 결론은 극비다. 그러나 '1백만 라퍄오(拉票)' 설이 흘러나왔다. 매표가 가능한 1백만 가구를 추출해 10만 신타이비(약 4백만원)씩을 뿌린다는 얘기다. 여기에 드는 최소 1천억 신타이비(약 4조원)의 경비는 모두 '비공식 후원세력' 이 부담한다.

국민당의 처지는 그만큼 급박하다. 반세기에 걸친 집권이 한꺼번에 뿌리째 뽑힐 수 없다는 의지의 발로이기도 하다.

가장 위협적인 상대는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후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대만인들의 존경을 받는 리위안저(李遠哲)중앙연구원장이 최근 陳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나서면서 '천수이볜 대세론' 이 급속히 번지고 있다. 국민당 세력을 나눠 가진 무소속 쑹추위(宋楚瑜)의 인기도 만만찮다.

국민당의 '1백만 라퍄오' 설에 야당진영은 분분했다. 陳후보의 국정자문으로 위촉된 쉬원룽(許文龍)자문위원은 16일 "국민당이 엄청난 규모의 '마지막 실탄' 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고 경고했다.

국민당이 믿는 또 하나의 카드는 대만판 북풍(北風), 즉 중국의 무력위협이다. 주룽지(朱鎔基)중국 총리가 선거를 사흘 앞둔 15일 "어떤 형태의 대만 독립 행위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고 경고하면서 대만은 다시 한번 술렁이기 시작했다.

陳후보는 "중국은 대만 선거를 지시할 자격이 없다" 고 맞받아쳤고, 宋후보도 "대만인은 무력위협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고 반발했다. 그러나 국민당 롄잔(連戰)후보만은 "대만 독립의 길은 하나다. 바로 피!" 라며 朱총리와 입을 맞췄다.

중국이 거듭 무력위협 카드를 꺼내든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다급해졌다는 이야기도 된다. 대만 독립파인 陳후보의 인기가 막판으로 갈수록 높아지자 중국도 당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만내 최대 일간지 중국시보(中國時報)의 왕춰중(王綽中) 베이징(北京)특파원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13일 당고위층이 모두 참석한 대만공작회의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陳의 당선을 저지한다' 는 결론을 내렸고, 이에 따라 그동안 온건노선을 견지했던 朱총리가 초강경 발언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돈바람' 과 '대륙 바람' 이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먹혀들 것인가로 모아진다.

타이베이(臺北) 민성둥루(民生東路)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쑤정궈(蘇正國)사장은 "돈은 돈, 표는 표라는 의식이 강한 대도시는 문제가 안된다. 민도가 낮고 국민당 세력이 강한 시골이 문제" 라고 말했다.

런아이루(仁愛路)에서 일본제 오토바이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둥루이지(董瑞集)사장은 "우리 상인들이야 안정을 해치지 않는 무난한 후보가 좋지 않겠느냐" 고 반문했다.

'한번 바꿔보자' 는 대만인들의 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다. "왜 우리는 우리나라를 떳떳이 '국가' 라고 외국에 내세우지 못하는가" 란 자주파의 목소리도 크다. 그러나 실리를 중시하는 상인들, 옛날에 안주하려는 지방 유권자들, 반세기 집권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층 또한 만만치 않다.

타이베이〓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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