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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방에선] 제주 송악산은 마지막 생태자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석문을 따라 돌아가면 단수(短峀)가 가산(假山)과 같고, 종횡으로 벌어져 있으니 참으로 조화의 희극성이 있는 곳이다.

더욱 가괴한 것은 단벽(斷壁)의 높이가 천 길이나 될 만하고, 모두 물결이 개먹어 들어간 모양이 있으며, 앞에는 한줄기 적사(積沙)가 있어 봉우리가 되고, 위에 바닷물이 왕래한 흔적이 있으니 이것으로 본다면 황진청수(黃塵淸水)의 설이 어찌 맹랑한 것이겠는가?"

조선조 선조때인 1600년대 초 어사로 제주에 왔던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이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송악산을 탐방하고 기록한 '남사록' 중의 한 대목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가 이 산을 올랐던 것은 1601년 10월 17일. 그에게 이곳 가을의 풍경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듯 그는 이 때 자작시 한 편을 남겨놓기도 했다. 1570년 대에는 천하 한량 백호(白湖) 임제(林悌)도 이곳을 기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보존이냐, 개발이냐를 놓고 업자.행정 관청과 환경단체 사이에 승강이가 한창인 송악산에 대한 가치는 이미 4백년 전 조선시대에 판가름이 났다는 소리다.

1960년대 초부터 제주가 관광지로 방만하게 개발되면서 불과 몇 십년 사이에 제주는 산이나 바다나 까발려지지 않은 곳이 없다.

심지어 최근에는 국립공원에 저촉돼 있는 제1횡단도로( '5.16도로' 라고도 하지만 그 이름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확장사업에 대한 논란마저 줄다리기 끝에 이해 당사자들 쪽으로만 기울어져 버린 느낌이다.

제주섬의 서남쪽 끝에 있는 송악산은 세계적 이중분화구 자원으로 마지막 남은 제주의 '원시(原始)' 세계 중 하나다. 제주도 당국이 역시나 개발업자의 손을 들어준 상태지만 이제 더는 물러서선 안된다. 아니 송악산 해안의 단애(斷崖)처럼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모든 것을 망가뜨려 놓고 도대체 후세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오성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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