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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 몰린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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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의 경제 사령탑 티머시 가이트너(사진) 재무장관이 1년도 안 돼 궁지에 몰렸다. 엄청난 규모의 세금을 퍼부어 월가의 초대형 은행과 자동차회사를 구해주고, 갖가지 비상조치를 동원했지만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비난의 화살이 그를 향한 것이다.

여기다 지난해 9월 AIG를 구제하는 과정에서 가이트너가 골드먼삭스·JP모건 등 월가 일부 금융회사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의회가 임명한 특별감사관 닐 바로프스키가 낸 보고서에서다. 정부가 AIG에 준 구제금융이 고스란히 골드먼삭스·JP모건 빚 갚는 데 쓰이는 걸 당시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였던 가이트너가 수수방관했다는 것이다.

급기야 19일 열린 상·하 양원합동 경제위원회 청문회에서 공화당 케빈 브래디(텍사스) 하원의원이 가이트너를 향해 “경제 정책은 실패했고 모든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고 쏘아붙였다. 민주당 피터 데파지오(오리건) 하원의원도 전날 MSNBC 방송에서 “미국인에게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되찾아 주려면 두 개의 일자리만 더 희생하면 된다”며 가이트너와 래리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을 지목했다.

일각에선 가이트너를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2기 내각의 도널드 럼스펠트 국방장관에 빗대기도 한다. 럼스펠트는 ‘대량 살상무기’를 없애야 한다는 명분으로 이라크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약속했던 승리는커녕 미국을 전쟁의 늪에 빠뜨리면서 부시 정권에 부담만 지웠다. 부시는 럼스펠트 경질 압력을 2년간 버티다 결국 중간선거 패배 후 교체했다.

가이트너의 입지가 흔들리자 벌써부터 후임 하마평도 오르내린다. 뉴욕 포스트는 23일 익명의 워싱턴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가 급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이먼은 오바마 대선캠프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골드먼삭스와 씨티그룹이 임직원 고액 연봉 문제로 정부와 대립할 때도 다이먼은 “인재를 잡기 위해 고액 연봉이란 당근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해 점수를 땄다.

그러나 다이먼에게도 약점이 있다. 무엇보다 월가 출신이라는 점이다.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 규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특히 다이먼은 오바마가 역점을 두고 있는 소비자보호청 신설에 반대해왔다. 결국은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는 이유에서다. 금융회사의 규모를 제한하는 방안도 미국 금융산업의 경쟁력만 갉아먹을 거라며 앞장서서 비판했다.

다이먼 스스로도 가이트너의 자리를 빼앗으려 한다는 인상을 주는 데 대해선 경계하고 있다. 그 자신이 가이트너와 가장 가까운 월가 인맥이기 때문이다. JP모건의 한 간부는 “다이먼이 JP모건에 6~7년 정도 더 있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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