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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리프트…장애인들 곤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1분 20초 대 18 분. '

환승역인 서울지하철 7호선 대림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40여m 계단을 일반인과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각각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일반인들이 에스컬레이터로 1분 20초 정도면 갈 수 있는 계단을 휠체어 장애인들은 최고 18분이 걸려서 간다. 이동속도가 느리고 불편한 리프트를 이용하기 때문.

리프트는 편도 이동에만 8~9분이 걸리고 계단 맨 위에 있을 땐 밑으로 내린 다음 다시 타고 올라가야 하므로 16~18분이 소요된다.

휠체어 장애인들은 지하철 타기가 겁난다.

지하철역마다 엘리베이터.휠체어 리프트 등 장애인 편의시설이 늘고 있지만 리프트를 너무 자주 타야 하는 등 여전히 이용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 40분 거리가 장애인에겐 2시간〓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김이수(金利洙.41.서울 영등포구 신길5동)씨와 함께 지난 9일 지하철역내 장애인 편의시설을 점검해 보았다. 金씨는 선천성 소아마비로 어렸을 때부터 휠체어를 탔으며 "지하철은 엄두가 안나 처음 타 본다" 고 말했다.

그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7호선 신풍역에서 출발, 장애인 편의시설을 이용해 세종문화회관 바로 뒷편 5호선 광화문역까지 가보기로 했다.

신풍역→대림역 2호선 환승→영등포구청역→5호선 환승→광화문역까지 가는 코스. 이날 오후 2시 30분 신풍역을 출발해 광화문역을 빠져나온 시각은 오후 4시 30분. 일반인에게는 40여분 정도 거리가 金씨에겐 3배에 해당하는 2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실제 지하철을 타는 시간 외에 엘리베이터 2번, 휠체어 리프트 7번을 타는 데만 1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계단 한 곳을 리프트로 올라가는데 최소 4분에서 최고 18분까지 걸렸다.

2호선 영등포역의 경우에는 5호선으로 갈아타기까지 리프트를 모두 4번이나 이용해야만 했다. 金씨는 "일부 구간에서 리프트를 탈 때 경보음이 너무 시끄러워 불필요하게 타인의 시선을 끄는 것이 민망했다" 고 말했다.

이날 장애인 편의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진 코스를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金씨가 역무원 등의 도움을 받지 않고 광화문역까지 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출발역인 7호선 신풍역은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설치된 리프트가 수리 중이어서 리프트 수리원들이 휠체어를 들어 옮겨줬다. 2호선 대림역에서 승강장까지 올라가는 계단에도 리프트가 없어 역무원 등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지하철 역무원이나 공익요원들은 金씨를 발견하는 즉시 다가와 리프트 탑승을 도와주는 등 친절한 편이었다.

◇ 문제점〓서울시는 '지난 1984년까지 개통된 '1기 지하철(1~4호선)의 경우 98년부터 2005년까지 예산 8백억원을 들여 장애인 편의시설을 확충한다. 2기 지하철(5~9호선)은 애초부터 장애인 편의 시설을 염두에 두고 공사를 했거나 설계 중이다.

하지만 기존 계단에 휠체어 리프트만 장착할 경우엔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이고도 장애인들의 외면을 받기 일쑤다.

환승역은 공사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노선과의 연계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설계하다 보니 환승통로가 일반인에게조차 너무 길다.

지하철공사 박병식(朴炳植.52)건축공사부장은 "되도록 휠체어리프트를 최소화하고 엘리베이터를 많이 설치하려고 계획 중이나 기존 구조물과 지상여건의 제한 때문에 쉽지 않다" 고 말했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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