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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씨, 새 산문집서 한국문학 강한 비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문학판은 썩었다. "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의 시인 최영미(39)씨가 문단과 평론가들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곧 출간할 산문집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사회평론)에서다.

"대한민국의 문학판이 썩은 건, 문학을 권력의 수단으로 알고 자기들끼리 모여 서로 상을 주고 출판기념회다 심포지엄이다 하며 자기도취에 빠진 우물 안 개구리들 때문이다. "

최씨는 감정적 표현까지 마다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평론가들의 비평에 반론을 제기했다. 평론가겸 시인인 김정란(상지대)교수는 아예 거명까지 했다. 김교수는 최근 최씨에 대해 "시의 기본이 안돼 있다" "남성으로부터 독립한 여성이 전혀 아니다. 여전히 남성에게 사랑해달라고 애걸하고 있다" 라고 혹평을 했었다.

최씨는 "김정란씨는 기억력이 형편없다" 고 깎아내렸다. 그 증거로 1994년 '서른 잔치는 끝났다' 라는 그의 첫 시집이 나온뒤 김교수가 계간 '시와 반시' 에 게재했던 "거친 어법에도 불구하고 매우 건강하게 느껴진다" "잃어버린 쓰라림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는 긍정적인 평가를 길게 인용했다.

최씨는 이어 "김교수는 어떻게 '시의 기본도 안돼 있는' 시인에게 무려 9쪽에 걸친 아름다운 평문을 쓸 수 있었나. 나는 김정란씨에게 '비평의 기본' 에 대해 묻고 싶지는 않다" 라고 썼다.

한편 김교수는 평가가 달라진 것에 대해 "94년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와 98년 둘째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는 큰 차이가 있어 평가가 다를 수 밖에 없다" 고 반박했다.

김교수는 "첫 시집은 사랑에 대한 여성적 정체성이나, 80년대 후일담으로서 진정성 등 평가할만한 점이 있었고 시인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98년의 시집은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고 말했다.

최씨는 자신에 대한 평단의 일반적 평가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나의 시세계를 '80년대와 운동' 이라는 협소한 틀로 가두어 청산주의라 매도하는 시각에 대해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운동' 이니 '혁명' 이니 하는 말들이 등장하는 시는 두 권의 시집을 통틀어 대여섯 편에 불과하다. "

최씨는 그간 문단활동에서 겪었던 섭섭함도 주저없이 털어놓았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들을 안 만나고 살자는 게 내 철학이다. 그런 내게 '상업적' 이란 비난을 하는 것, 좀 억울하다. " "명예훼손에 가까운 욕설에도 나는 참았다. " 며 쌓인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이런 자신의 행동에 대해 "내 곁엔 아무도 없다.

…외로웠지만 어차피 내가 선택한 고독" 이라고 쓰고 있다.

지난해 가을 속초로 이사해 칩거해온 최씨인지라 그의 산문집은 대부분 속초 바닷가에 살면서 느끼는 일상의 얘기가 담겨있다. 최씨는 "'단지 서울이 싫어서, '일산에서 서울을 바라보고 사는 삶이 싫어서 떠났을 뿐, 속초가 특별히 좋아서 이사를 결심한 건 아니었다" 며 "멀리 설악산을 쳐다보거나,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보는" 생활에 만족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런 그가 문단에 대한 비판을 퍼부은 것은 자신의 소박한 평화와 행복을 깨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내뱉는 원망인 듯하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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