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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성급호텔·코넬대 MBA 나와 버거집 차렸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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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준 대표

버거 패티가 그릴에 구워지면서 메캐한 냄새를 풍긴다. 원하는 음료수를 골라 손에 쥐고 버거를 주문한다. 가격은 선발 프리미엄 버거 체인보다 20% 쌌다. 눈에 쏙 들어왔다. ‘빈티지’스러운 인테리어는 버거와 왠지 모르게 어울렸다. 이달 초 문을 연 홍대 앞 수제 버거 하우스 ‘버거 비(Burger B)’다. 맛도 맛이지만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주인장이 있다’ 해서 이곳을 찾아가봤다.

“패스트푸드 햄버거를 먹고 자란 20ㆍ30대가 수제 버거로 입맛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중ㆍ고등학생 때 지겹게 먹은 햄버거를 어른 돼서도 사먹고 싶겠어요? 좋은 재료를 엄선해 손수 만든 버거가 인기를 끄는 비결입니다. 또 햄버거는 햄버거다워야지 비싼 값을 주고 ‘칼질’하며 먹는 우아한 음식이 아니잖아요.”

이것이 영양과 저렴한 가격, 분위기를 내세우는 ‘버거 비’ 최석준(43) 대표의 ‘버거 철학’이다. 소문 그대로 최 대표의 이력은 화려했다.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식음료팀 차장, W워커힐호텔 VIP 관리팀장과 마케팅팀장, CJ 외식사업부 파인다이닝(고급 외식업) 총괄 담당, 호텔 분야의 MBA라 불리는 코넬대 호텔경영학 석사. 14년간 쌓아온 그의 호텔 경력이다.

창업은 ‘시베리아에서 맞는 찬 바람’이라는데 따뜻한 보금자리를 차고 나온 이유는 뭘까.

“음식의 질, 식자재 구입, 소비자 취향, 마케팅 방식, 시장 조사, 고객 관리. 직장과 대학에서 배운 것들이죠. 이 정도면 제대로 된 외식업을 키워가기 위한 코스는 모두 섭렵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일한 경험을 이 일에 쏟아보고 싶었어요.”

최고급 레스토랑에나 걸맞는 ‘스펙’(경력)인데 왜 하필 버거집을 냈을까.

“워낙 햄버거를 좋아했어요. 아들도 무척 좋아하고. 맛있다고 소문난 버거집은 수소문해 다녔죠. 간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잖아요. 그리고 국내 수제버거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봤죠.”

그는 햄버거 시장은 20여년 전부터 성장해왔지만 수제버거 시장은 1년 전부터 본격화됐다고 설명했다. ‘정크 푸드에 대한 반감’ ‘색다른 버거 문화’ ‘레스토랑식 외식업에 대한 가격 경쟁력’ 등을 성장 배경으로 꼽았다.

“요즘 젊은이들, 햄버거로 해장한대요. 24시간 여는 버거집을 가보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20ㆍ30대가 버거를 먹고 있었죠. 취기가 올라올 때 배가 고프거든요. 미국인은 원래 햄버거로 해장을 하지만 한국인이 그렇게 된 건 얼마 안됐어요. 젊은이의 입맛이 점차 서구화되가고 있어요. 그래서 포크와 나이프를 쓰는 프리미엄급 매장과 정크 푸드로 낙인찍힌 패스트푸드점 사이에 카테고리를 만들었습니다. 맛을 찾아서 뉴욕을 뒤졌습니다.”

버거비 매장 내부

그는 버거의 본고장 미국에서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ㆍ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출신 셰프와 맛집을 다니며 메뉴 개발을 했다. 나흘동안 30여개의 버거를 먹어가며 말이다.

“수제 버거를 만들기로 한 뒤 미슐렝에 언급된 버거집 10여 곳을 돌아다니며 30여개의 버거를 먹어봤죠. 버거의 기본은 번, 패티(으깬 고기), 토핑, 소스인데 그 중 패티를 가장 중점을 삼았습니다. 가장 맛있게 먹은 한 곳이 있었는데 그 집의 비결은 패티에 있었죠. 둘이 왔다갔다하면서 몰래 주방을 훔쳐보니 패티 40개가 그릴 위에서 한꺼번에 확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패티는 어떻게 그릴에 굽느냐에 따라 향과 맛을 동시에 잡을 수 있거든요.”

입맛은 한번 높아지면 쉽게 낮출 수 없다. 최 대표, 그의 미각은 수준급일텐데 ‘질 좋고 값 싼’ 버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업무의 연장이었지만 호텔에서 일하면서 좋은 음식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입맛이 까다롭게 변했죠. 버거 역시 내 입에 맞지 않으면 먹지 못합니다. 육중한 호주산 청정 패티와 틸라무크 치즈, 매일 배달되는 야채 등을 원칙으로 삼아 만들었죠. 식자재를 보면 값을 비싸게 받아야 했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간’ 버거는 경쟁력이 없다고 봅니다.”

맛은 고급으로 유지하면서 가격에서 거품 요인을 찾아냈다. 버거류는 6000~7000원대. 재료 값을 인건비(셀프 주문 형식)에서 빼 충당했다. 이곳에선 아이스크림을 듬뿍담은 밀크쉐이크, 레몬 1개가 통째로 들어가는 레모네이드, 저렴한 값의 일리 커피(최 대표는 ‘서울 시내에서 가장 싸다’고 자부한다)도 맛볼 수 있다.

“버거는 음식이 아니라 문화입니다. 캐주얼하고 자유분방한, 그러나 건강을 생각하는 그런 메뉴죠. 앞으로 유동인구가 많고 트랜드 세터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곳, 패스트푸드 햄버거를 기피하는 학부모 밀집 거주 지역을 양분화해 사업을 확장해 나갈 것입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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