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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스카 쇼토쿠 태자는 가공인물"-日 오야마교수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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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일본 고대사의 대표적 인물인 쇼토쿠(聖德)태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이 제기돼 일본 학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쇼토쿠태자(574~621)는 한국 불교를 받아들인 최초의 일본인으로 아스카시대의 정치가이자 종교사상가. 우리나라 중학교 교과서에 "고구려의 승려 혜자(惠慈)는 일본의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됐다" 는 사실이 실려있다.

또 태자의 모계가 백제인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우리와 친숙한 인물이다.

그는 '헌법17조' 와 '관위(冠位)12계' 를 제정해 일본 국가의 틀을 잡았으며 호류지(法隆寺)를 창건해 불교 중흥에 힘썼다는 것이 정설이다.

오야마 세이치(大山誠一.주부대학.고대사)교수가 최근 "쇼토쿠 태자는 실존하지 않았다. 정치적 요청에 의해 '일본서기(日本書紀)' 에 등장한 허구에 불과하다" 란 주장을 하고 나선 것.

쇼토쿠 태자가 실존인물이란 것은 일본 사학계의 정설. 하지만 쇼토쿠 태자와 관련된 사료와 업적의 일부분에 의문을 제기한 주장은 있었다.

오야마 교수는 이를 훨씬 뛰어넘어 쇼토쿠 태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것. 일본서기와 호류사계 사료를 중심으로 주장을 펴고 있는 오야마 교수는 일본서기에는 쇼토쿠태자를 황태자(皇太子).황자(皇子)등으로 지칭하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이런 용어들이 없었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한다. 후대 사람들이 가공의 인물을 만들다 보니 당시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후대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가 쇼토쿠태자의 등장이 당시 정치적 필요에 의해 이뤄졌다는 주장을 펴는 것은 불과 8년 사이에 그에 관한 기록량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기 때문. 712년에 완성된 '고사기(古事記)' 에는 쇼토쿠태자의 출생 기록만 실려 있지만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에선 기록이 크게 늘어났다.

두 역사서가 쓰여진 8년이란 기간은 나중에 천황으로 오르게 되는 오비토(首)황자(皇子)가 왕위 계승자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해 지위가 불안했던 시절. 당시 권력층이 황태자인 오비토황자의 정당성을 높이느라 쇼토쿠태자란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주장이다.

실제 오비토 황자가 왕위를 계승할 무렵은 황태자로 봉해지면 바로 천황으로 오르는 '황태자 제도' 가 정착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오비토 황자측은 황태자 쇼토쿠 태자란 가상의 인물을 선례로 만들어냄으로써 황태자인 오비토가 당연히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할 속셈이었다는 것이다.

이밖에 일본서기와 호류사계 사료에 기록된 쇼토쿠태자의 사망 연도가 각각 다른 점도 의심스럽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일본 학계에서는 "지금까지 비판적 연구를 총괄하는 획기적인 연구로 일본서기와 관련한 검토는 설득력 있다" 는 반응과 "사료를 읽는 방법이 난폭하고 논리가 단조롭다" 는 반응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대체로 오야마 교수의 주장이 나름대로 틀을 갖추고 있어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설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부경대 사학과 이근우(일본고대사)교수는 "이런 주장은 재야 역사학자들에 의한 경우가 많지만 활발한 학문활동을 벌이고 있는 강단사학자가 제기했다는 것은 눈여겨 볼 부분" 이라며 "특히 일본서기의 사료적 가치를 문제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으며 논란의 여지는 충분하다" 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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