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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길 다른삶] 1. 조정래와 이문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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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어느 시대나 문화를 이끌어온 '주역' (主役)들이 있다. 갈래가 다양할 수밖에 없는 문화는 흔히 같은 분야에서 서로 다른 경향을 보이는 두 명의 거물에 의해 양대 줄기를 이루곤 했다.

문학.음악.미술.학술.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대의 문화를 주도해온 주인공 두 사람을 가려뽑아 문화의 흐름읽기를 시도한다. 주역들의 삶과 스타일을 되새기면서 우리 문화가 만들어져온 뒤안길을 함께 거닐어보자.

지난해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조사한 '20세기의 베스트셀러' 의 1위는 이문열씨가 평역한 '삼국지' 였다.

20위까지 선정한 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유일하게 두 편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5위, 아리랑-14위)이 오른 소설가는 조정래씨였다.

1997년 서울대생이 뽑은 '가장 감명받은 작품'은 '태백산맥' 이었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 는 이문열씨였다.

조정래와 이문열. 두 사람은 80년대 이후 20년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문학사에 남을 기록을 만들어온 문단의 주역(主役)들이다. 두 작가를 인터뷰한 결과 유일하게 같은 답변을 한 대목은 '존경하는 작가' 에 대한 질문이다. 답은 '없다' 였다.

조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국내외 여러 작가의 작품을 읽어왔지만 특별히 감명깊은 작가나 작품이 없다. 그저 '좋다' 싶은 작품은 좀 있었지만…" 이라고 말했다. 이씨도 "존경한다고 할만한 작가는 없다. 문학 공부를 할 때 장편은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를 보고, 단편은 안톤 체홉 등을 본 정도" 라고 말했다. 각각 '최고의 작가' 라는 자부심을 내비친 셈.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스스로 최고임을 자부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두 사람은 무척 대조적이다.

20여년에 걸쳐 문단활동을 해오면서도 같은 모임에서 활동한 적이 없다.

두 사람에 대한 가장 일반적 인식은 좌우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조씨는 스스로 '좌파' 로 불려짐을 자랑스러워했고, 이씨는 '우파' 를 자임했다. 조씨는 "한국에서는 좌파가 '빨갱이' 라는 말로 상징되는 나쁜 이미지였지만, 사실 좌파란 권력을 비판하는 소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다.

그런 소수에 의해 인류의 역사는 진전돼왔다. 그런 점에서 나는 좌파적이다" 라고 말했다.

대표작 '태백산맥' 은 바로 이런 작가의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투영된 작품이다. 그가 대변하고자 했던 소수, 권력으로부터 소외되고 현실에서 억압받아온 민초들의 얘기이자 ' 빨갱이' 들의 얘기다.

'태백산맥' 이 이전의 비슷한 작품(이병주의 '지리산' .이태의 '남부군' )들과 다른 점은 2백여의 등장인물을 통해 해방전후 공간의 사회상을 총체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그래서 '분단문학의 총결산' 이란 평가를 받는다.

반면 이씨는 '우파' 로 불리는데 대해 "본질적으로 우파적이며, 이는 누군가 서 있어야할 자리" 라고 말했다.

이씨는 "개인사가 자신을 우파이게 만든 결정적 요인의 하나" 라고 밝혔다.

남로당원이었던 아버지의 월북과 영남 사림가문의 전통이 보수적.우파적 입장의 개인적 배경이라는 얘기다.

'영웅시대' 는 그의 우파적 시각을 대표하는 이념소설이다. 남로당계의 지식인이 6.25를 겪으면서 사회주의 이념에 회의를 느끼고 월북 후에는 숙청당한다는 얘기다. 그의 보수적 시각, 가부장적 전통에 대한 강조는 97년 발표한 '선택' 에서 작가의 가문이 자랑하는 4백년전 열녀 장씨 부인을 통해 드러났다.

그런데 '글쓰기' 라는 차원에서 보면 이런 특징은 뒤바뀐다.

조정래씨가더 보수.전통적이고 이문열씨가 더 진보적.실험적이다. 시인 김정환씨는 "조씨의 글쓰기는 사실주의적이고 서정적이며, 하나의 주제를 끈기있게 천착해가고 있다.

반면 이씨는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매우 실험적인 글쓰기를 시도해왔다" 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조씨는 초기작에서부터 태백산맥의 분위기를 성숙시켜왔다. 하층민들이 겪는 현실적 억압과 해방전후 공간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주조를 이룬다.

73년 발표한 '청산댁' 이 '유형의 땅' . '불놀이' 를 거쳐 '태백산맥' 이란 대하소설에 이르는 전통적인 확대.심화의 과정을 거쳐왔다.

반면 이씨는 젊은 시절 방황을 그린 성장소설 '젊은 날의 초상' , 기독교에 대한 회의를 소재로 한 관념소설 '사람의 아들' , 이념소설 '영웅시대', 역사우화로 분류되는 '시인' . '황제를 위하여' 등 글쓰기의 지평을 끊임없이 넓혀왔다.

성격 등 인간적 면모에서도 두 사람은 크게 다르다. 조정래씨는 매우 금욕적인 스타일이다. 글쓰기에 대한 '소명감' 도 남다르다는 평이다. 글쓰기 소재를 찾아나서면 온갖 자질구레 한 것도 다 메모하고, 안되면 사진이나 그림으로라도 채집한다. 집필에 들어가면 외부와의 접촉도 자제하며, 글쓰다 지치면 약을 먹어가면서 글을 쓴다. 최근 세번째 대하소설 '한강' 을 쓰면서 힘들자 담배마저 끊었다.

이문열씨는 다소 개방적인 편. 요즘도 좋아하는 선후배를 만나면 일단 폭탄주 3~4잔부터 들이킨 뒤 진짜 술자리를 벌인다. '명성황후' 를 연출한 윤호진씨 등 다른 장르의 사람들과도 자주 만난다. 개인서당인 부악문원을 운영하면서 제자들과 자주 술자리를 겸한 토론을 벌이며, ' 팬들이 찾아오면 직접 일일이 만나 온갖 얘기를 끈질기게 들어준다.

이들을 닮은 셈인지 부인의 성격도 서로 다르다. 조씨의 부인 김초혜씨는 조씨보다 먼저 등단한 시인이기에 작품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기도 하고, 외부인의 편지에 대신 답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씨의 부인 박필순씨는 문학과 무관한 현모양처형으로 자수(刺繡)가 수준급이다.

평론가 김윤식(서울대.국문학)교수는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른 두 사람이긴 하지만 모두 역사에 기대고 있으며,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콤플렉스에서 글쓰기의 힘을 얻은 작가" 라고 말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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