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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허울뿐인 PC방 금연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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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청소년을 간접흡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PC방에 흡연실과 금연실을 격리.설치하도록 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흔히 인터넷 대동맥으로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 되는 데 크게 기여한 PC방은 전국에 걸쳐 2만 여개가 성업 중이고 하루에도 수십만명의 청소년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조치다.

PC방에 흡연실과 금연실이 분리.설치돼 있다고 하면 성인들이 사용하는 흡연실의 담배 연기가 금연실까지 가지 않도록 돼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이 우리 PC방의 실태다. PC방에 가보면 흡연실과 금연실이라는 표지만 여기저기 붙어 있을 뿐 담배 연기를 차단하는 어떠한 시설이나 장치도 없다. 적어도 필자가 다녀본 PC방은 모두 그랬다.

우리나라는 청소년들이 유해환경에 노출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여러 제도와 정책을 적극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을 조정하기 위해 국무총리실 산하에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청소년들이 흡연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학교 주위에는 담배 자판기의 설치를 금지하고,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매하면 처벌받도록 하는 정책들을 시행하고, 또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 일로 청소년보호위원회의 활동이 매스컴에 자주 등장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PC방 금연실을 현행대로 방치한다면 이러한 정책들의 효과는 거의 반감되리라 생각된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PC방을 이용하고 있고 또 PC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지를 보라. 필자가 가본 PC방에는 언제나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들까지 북적거렸고, 어른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로 탁해진 실내에서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PC방에서 폭력물과 같은 콘텐트에 청소년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함께 청소년들이 담배 연기 속에서 인터넷을 즐기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바깥에서 자투리 시간이 날 때 가끔 들르지만 오래 앉아 있지 않아도 목이 칼칼해질 정도였다.

주위에도 자주 얘기했지만 이런 규제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청소년 보호정책에 큰 허점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첫째, 흡연실과 금연실의 구분이 너무 형식적으로 돼 있어 규제 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규제가 원래 그렇다면 규정을 고쳐야 하고 사업자들이 규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이런 상황이 생긴 것이라면 감독을 좀더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둘째, 건강상 위해를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교육 목적에서도 형식적인 금연실 운영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담배 연기가 차단되지 않는 금연실이 버젓이 있는 것을 보고 누가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할 것인가.

물론 흡연실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면 PC방 사업자들에게는 큰 경제적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라나는 청소년 세대의 건강이 보호받지 못한다면 사회적 손실은 더 없이 커질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보아도 허울뿐인 금연실을 그대로 두면 PC방의 인기를 끌어내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필자라도 자녀를 PC방에 못 가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놓고 이제는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정부 당국과 지방정부.시민단체.사업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개선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물론 언론도 이런 문제를 이슈화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조현석 서울산업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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