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미·일 핵밀약 ‘판도라 상자’ 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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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일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부가 과거 자민당 시절 이뤄진 ‘핵무기 반입 밀약’을 쟁점화하면서 미·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미·일 간 핵 밀약의 존재를 조사해온 외무성 조사팀은 최근 내부 보관 자료 중에서 밀약 내용을 논의한 ‘토의 기록’을 발견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21일 보도했다.

미·일 핵 밀약은 1960년 양국 안보조약 개정 당시 일본 국내로 핵무기 탑재 미 함정의 기항과 항공기의 영공 통과가 사전 협의 없이 가능하도록 비밀리에 합의했다는 내용이다. 이 밀약에는 또 한반도 유사시 일본과 협의 없이 한반도에 주일 미군을 투입할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일본 정부는 그간 이런 밀약의 존재를 부인해왔다.

밀약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이 허위로 드러나면서 파장 확대는 불가피해졌다. 하토야마 정부는 총선 공약대로 의혹 규명을 위해 내년 1월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핵 문제를 둘러싼 일본 내 국민적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미·일 관계는 더욱 악화할 수도 있다.

핵 밀약은 68년 발효된 일본의 ‘비핵 3원칙(핵 제조·보유·반입 금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원칙을 중시하는 일본으로선 미국에 핵 밀약을 없던 일로 하자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전쟁 억지력으로 핵무기를 필요로 하는 미국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이다. 이 문제는 미국의 핵우산이 필요한 일본 정부로서도 원칙론만 내세우기도 어렵고, 핵 밀약의 존재를 부인해온 자민당도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되는 등 여야 모두에게 ‘판도라의 상자’가 될 전망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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