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자족기능 갖춘 첨단도시 만든다더니 4만 가구 신도시에 아파트만 빽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4면

판교·동탄·광교·파주교하·김포한강 등 수도권 2기 신도시의 개발 컨셉트는 자족기능과 풍부한 편의시설을 갖춘 첨단 도시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무색하게 한다. 신도시의 핵심시설인 복합단지 개발이 일제히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도시뿐 아니라 다른 대형 민관 합동 복합단지 개발사업도 대부분 휴업 상태다. 대한건설협회 민자팀 이병일 과장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건설사나 금융기관에 이런 프로젝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꼽혔다. 이들 땅이 대부분 알짜배기인 데다 공기업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갖춘 프로젝트로 인식됐다. 당연히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한 컨소시엄 간 경쟁도 치열했다.


2007년 판교 알파돔 복합단지 프로젝트가 대표적으로, 사업부지를 감정가의 두 배 수준인 3.3㎡당 7200만원에 사겠다고 제시한 롯데건설 컨소시엄이 따냈다. 그러나 지난해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상황이 싹 바뀌었다. 예상치 못했던 경기 침체로 사업성에 의문이 생기면서 물속에 숨어 있던 사업구조의 문제점 등이 일제히 부각된 것이다. 대형업체인 A건설 사장은 “알파돔 사업자로 선정되지 못해 속이 많이 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라며 “사업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매달리는 한국 건설업계의 문제점이 노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 업체 간 의견 충돌로 사업이 꼬이는 경우도 많다. 건설사들은 금융기관에 불만이 많다. 프로젝트에 주주로 참여한 금융기관의 역할은 자금조달을 맡는 것인데 사업성이 불투명해지자 추가 조달은 고사하고 기존 투자금에까지 고금리를 매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07년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2.5%’ 정도였던 대출 금리가 최근에는 ‘CD+5~6%’로 높아졌다.

그러나 금융권의 입장은 다르다. 알파돔시티자산관리의 송양곤 팀장은 “금융기관은 추가 자금조달에 대해 권리만 있지 의무는 없다”고 전했다. 자본금을 출자한 금융기관이라도 사업성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추가 투자에 적극성을 보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사업을 함께 끌고 갈 공기업은 나 몰라라 한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심교언 교수는 “주주이면서도 땅값을 제때 받는 것에만 매달리고 토지대금 미납액에 연 17%에 이르는 연체이자까지 물리는 공기업도 있다”고 말했다. 사업에 참여한 업체가 10여 개사나 되기 때문에 주주회사 간 의견을 모으는 데도 시간을 끈다. 광명역세권 복합단지의 경우 2006년 개발회사가 설립됐지만 아직 사업계획안도 마련하지 못했다. 주주총회를 거쳐 수차례 사업계획을 변경했으나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내부에서 시끄러운데 외부 투자유치가 잘 될 리 없다. 국민은행 프로젝트금융부 강동규 팀장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금융기관에서 자체적으로 자금을 대지 못하고 외부 금융권에 손을 벌리는 사업에 어느 은행이 관심을 가지겠느냐”고 반문했다.

함종선 기자

대책은 없나
비슷한 사업 한꺼번에 몰려 … “규모 축소해야”

도시개발의 새로운 모델인 복합단지 사업이 난항을 겪으면 해당 지역 주민들만 피해를 보게 돼 있다. 이런 모델은 1990년대 초 개발된 신도시 상업지역에 소규모 상가만 난립하자 대형 복합단지를 만들어 입주민들에게 보다 나은 편의를 제공하려고 공기업을 내세워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1기 신도시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 사업지의 장기 방치도 문제다. 2006년 착공 예정이었던 인천 도화지구 개발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개발계획에 따라 사업부지 내에 있던 인천대는 이미 송도로 이사 간 뒤여서 사업지는 거대한 공터로 남아 있다. 주변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된다며 아우성이다.

이같이 대형 개발사업이 표류해도 관리·감독 정부기관이나 관련 법령 하나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공기업이 나서서 개발한다는 건 해당 지역 주민들에 대한 공적인 약속”이라며 “그러나 이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백화점·쇼핑몰·주상복합·업무시설 등 똑같은 성격의 복합단지가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들어서는 게 문제”라며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더라도 나중에 어떻게 채울 것인가의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궤도를 바꿔 사업을 축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건설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민관 합동 복합단지 개발사업의 68%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공공부문의 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GS건설경제연구소 이상호 소장은 “금융권이 전반적으로 투자에 몸을 사리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책은행이나 연·기금 등에서 공공성이 강한 이런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