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직무유기 은폐 바쁜 경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조선족에게 납치됐다 극적으로 탈출, 지난달 29일 입국한 무역업자 金모(35)씨는 "납치 직후 가족을 통해 경찰에 신고했으나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고 주장했다.

신고관서였던 서울 송파경찰서는 그의 귀국회견 몇시간 뒤 해명자료를 준비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지난해 12월 29일 金씨 아내의 신고를 받았다. 하지만 협박전화가 국내 통화가 아닌 국제통화로 이뤄졌고 몸값 입금을 요구한 계좌 역시 외국에서 개설된 것이라 둘 다 추적이 불가능했다" 는 게 경찰의 해명 요지.

경찰은 또 "중국 영사관에 이 사실을 알리고 경찰청 외사과에 공조수사를 요청하는 등 우리로선 할 바를 다했다" 고 덧붙였다.

그러나 본사 취재진의 확인 결과 경찰이 외국에서 개설된 것이라 주장한 계좌는 S은행 서울 동교동 지점에서 개설된 것임이 드러났다. 또 경찰이 연락했다는 영사관에서는 "전혀 연락받은 바 없다. 납치 사실도 金씨가 도망쳐 영사관에 온 2월 8일에야 알았다" 고 말했다.

심지어 송파서가 공조요청을 했다는 경찰청 외사과도 "송파서로부터 한마디도 들은 바 없다" 고 했다.

상황이 꼬이자 송파서측은 "중국내 경찰 주재관에게만 연락하면 알아서 처리할 것으로 생각해 영사관과 경찰청에는 따로 협조요청을 하지 않았다" 는 점을 뒤늦게 시인했다.

계좌추적과 관련, 송파서는 "S은행측에서 '외국계좌라 추적이 불가능하다' 고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수사관이 조선족 개설 계좌가 외국계좌일 것으로 판단해 '외국계좌도 추적이 가능한가' 라고 물어 '불가능하다' 는 답을 받은 것" 이라고 설명했다.

또 신고접수 이후 송파서내 어느 과에서도 이 사건을 담당하지 않아 실질적인 '수사종료' 의 상태였음도 확인됐다.

다행히 金씨는 납치 후 20여일 동안 감금상태에 있다 무사히 귀국했다. 그의 무사 귀국은 납치범들의 감시 소홀을 틈탄 金씨의 기지로 이뤄졌을 뿐 '조국' 의 관심과 지원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아내 李모(31)씨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도 가족들은 계속 납치범들의 협박에 시달리다 못해 백방으로 돈을 구해 납치범들에게 2천6백만원을 부칠 수밖에 없었다" 고 말했다.

이가영 사회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