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타산책] 고향 카퍼레이드 때 "해냈구나" 실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 하태권(左).양은주씨가 ‘하늘이 내린 예쁜 어린이’라는 뜻의 딸 (하)예린이를 안고 함박 웃음꽃을 피웠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까 일부러 핑크빛 계통의 옷을 맞춰 입었다. 수원=최정동 기자

"(금메달 딴 게) 실감이 안 났는데 고향(전북 전주) 카퍼레이드 때 '아, 내가 해냈구나' 싶었어요. 동네에 현수막도 걸려 있고…."

아테네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복식 금메달리스트 하태권(29)의 얼굴이 하회탈 같다. 늘 환한 표정이지만 요즘은 웃음꽃 만발이다. 지난 7일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기 구단을 찾았을 때,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구단 환영식에 참석하러 온 가족을 안내하는 중이었다. 오전엔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고구마밭 캐기 체험을 했는데 허리 아픈 줄도 모르고 쑥쑥 뽑았단다. "금메달을 따고 나니 아픈 데도 씻은 듯 나았어요."

이젠 욕심 생겨 진로 고민중

이번 금메달로 무엇보다 처가에 체면이 섰다. 단짝 김동문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혼합복식 금메달을 땄을 때, 그는 '피해자'였다. 당시 그는 아내 양은주씨와 열애 중이었다. 장인.장모는 "자네 친구는 금메달 땄대"하며 아쉬워했고, 양씨도 말은 안 했지만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일단 제가 배가 아팠어요. 친구 일이니 좋긴 한데 샘도 났죠."

그와 김동문은 진북초등 4학년 때 한 반 짝꿍으로 만났다. 특별활동 시간에 김동문이 같이 배드민턴을 하자며 끌었다. "처음엔 둘 다 키도 작고 잘하지도 못했어요. 동문이는 고1 때 운동을 포기할 생각도 했으니까요. 제가 '넌 소질이 있다'며 붙잡았죠." 다행히 그 뒤로 키가 확 컸고(하태권 1m87㎝, 김동문 1m84㎝) 실력도 늘어 92년 나란히 국가대표에 뽑혔다.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춘 건 99년 3월. 복식조 결성 한달 만에 스웨덴오픈에서 우승했고, 무적 콤비로 승승장구했다. 김동문은 라경민과 짝을 이뤄 혼합복식도 뛰었다. 2000년 시드니 때도, 2004년 아테네 때도 김-하 조의 남자복식보다는 김-라 조의 혼합복식 우승 가능성이 컸다.

20년 죽마고우가 남자 복식에 전념해 주길 바랐을 법도 한데 하태권은 고개를 저었다. "동문이가 혼합복식에서 잘 풀리면 저랑 뛸 때도 더 잘 하더라고요. 이번에도 혼합복식 8강전에서 지고 나서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제가 '남자복식에서 잘해서 경민이 몫까지 따자'고 다독였죠."

"김동문 신부감 어디 없나요"

하태권은 요즘 진로 문제로 고민 중이다. 그는 아테네 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할 생각이었다. 15개월 된 딸 예린과 터울이 벌어지기 전에 둘째 아이도 갖고, '가족 봉사'도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금메달을 따고 보니 욕심이 생겨요. '맛'을 알았다고나 할까요. 마음 같아선 2010년까지도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동문이도 공부(원광대 박사과정)에 뜻이 있다니 결심이 안 서요."

신문에서 고운 이름을 봐 놨다가 딸 이름을 직접 지을 정도로 꼼꼼한 그는 요즘도 가끔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1년 중 집에 들르는 날이 20일도 채 안 되는 대표팀 생활. 전주에서 시부모를 모시며 묵묵히 자신을 뒷바라지해온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다. 내년께 수원 구단 근처에 집을 장만해 함께 살 생각이다. 남은 바람은 단짝 김동문이 가정을 꾸리는 것. 인터뷰 말미에 공개구혼을 대신 하는 걸 잊지 않았다.

"제가 보증합니다. 착실하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멋진 남자예요. 참한 아가씨들 연락 바랍니다."

수원=강혜란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