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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사라지는 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아틀란티스, 1만2천년 가까이를 거슬러 그 옛날 대서양에 있었다는 전설의 대륙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해신(海神) 포세이돈이 땅을 만들어 아내 클레이토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 열명이 나누어 다스렸다고 한다.

산물이 풍부해 주변 여러 나라와 교역을 하거나 전쟁을 벌여 취한 전리품 등으로 크게 번영하던 이 대륙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지진과 화산활동으로 단 하루 만에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 대륙의 실재(實在)를 입증할 만한 흔적은 아직껏 발견된 적이 없지만 그럴 가능성을 믿고 지금도 아틀란티스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어쨌든 만의 하나라도 실재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자연이 가하는 순간의 재앙이 거대한 대륙마저 간단히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는 데 섬뜩한 느낌을 갖게 된다.

1세기께 베수비오화산 폭발로 시가 전체가 묻혀버린 폼페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불가항력의 천재지변이 큰 도시 하나를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쓸어가 버린 것이다.

화산재를 뒤집어쓴 채 질식해 죽은 참혹한 인간 미라군(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후 1천7백년이 지난 18세기 중엽이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이런 재난은 예기치 않게 순간적으로 닥친 것이어서 당한 쪽에선 그나마 비극을 비극으로 느낄 겨를조차 없기 쉽다.

정말 비극적인 것은 인간이 원인을 제공해놓고 그로 인한 재난이 올 것을 번연히 알면서 속수무책으로 운명의 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이를테면 지구온난화에 의한 해수면(海水面) 상승으로 나라 전체가 물속에 잠길 위험에 처한 투발루의 경우처럼 말이다.

알다시피 지구온난화는 한 덩어리로 모인 이산화탄소.프레온가스 등이 마치 덮개처럼 지구를 두르고 밖으로 나가는 열을 가로막는 데서 생겨난다.

지난 한 세기 지구 온도는 섭씨 0.6도가 올랐다는데 이대로 가면 21세기말엔 지금보다 3~5도가 상승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지구 온도가 섭씨 6도 오르면 극지의 만년빙하도 거의 다 녹아내려 바닷물의 수위는 5m가 상승한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는 영국에서 독립한 지 겨우 23년째를 맞은 인구 1만1천명의 소국이다. 면적도 9개 섬을 합쳐봐야 사방 시오리 정도인데 워낙 지대가 낮아 가장 높은 곳이라야 해발 5m가 채 안된다.

이 투발루가 요즘 해수면 상승으로 물속에 잠길지도 모를 절박한 처지에 놓여 이웃 호주.뉴질랜드.피지 등에 자국민의 집단이민을 받아달라고 애걸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얼마 전엔 해수면이 3.2m나 올라가는 바람에 수도 푸나푸티를 비롯한 섬 대부분이 6시간 동안이나 물에 잠겼다 나왔다고 한다.

남의 일로만 볼 것이 아닌데 주변국들의 반응이 아직은 신통찮다고 하니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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