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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준비안된 영어 원어수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 18일 교육부 상황실에서 열린 문용린(文龍鱗)교육부장관의 2000년도 주요 업무계획 발표에서는 단연 영어로 초.중.고교 수업을 진행한다는 내용이 관심을 끌었다.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영어 원어(原語)수업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것이 골자다.

기자들의 보충 설명 요구에 文장관은 "전체 수업의 10%만이라도 실시하고, 영어교사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하는 방법이 있을 것" 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장관의 '영어교육' 구상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이 잇따랐던 것은 일본의 '영어 제2공용어론' 과의 비교 때문이었다.

일본 총리 산하 자문기구인 '21세기 일본의 구상' 은 인터넷 '광속도' 시대 속에서 영어는 '생존의 수단' 이라는 판정을 내려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文장관 역시 "앞으로 교육의 핵심은 정보화와 영어" 라고 진단할만큼 ' 양국 모두 영어에 관한 절실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이 목표를 풀어가는 해법에서는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일본은 잠재적 영어 사용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영어 원어민 교사가 공립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사립학교에서는 정교사로 채용돼 왔으며 많은 국립대학들이 외국인들을 종신교수로 써왔다.

또 일본은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주중에 이틀을 사설 외국어 교육기관에서 수강할 수 있도록 바우처(voucher)제도도 활용할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교육부의 영어교육 발표를 접한 한 초등 교사는 "영어 수업을 대부분 담임교사들이 맡고 있는 현실을 교육부가 너무 간과하고 있다" 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콩글리시 교사에게 영어로 수업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 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한때 8백여명이 넘던 원어민 교사를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외화 유출을 이유로 1백여명만 남기고 대부분 철수시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선 교육현장에선 현실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영어 원어 수업계획이 공염불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만 무성하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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