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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종수의 시시각각

발목만 잡아서는 못 이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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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유는 자명했다. 경기규칙을 통일하지 않고 서로 각자의 종목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이노키는 권투글러브를 끼고 알리와 맞서고 싶지 않았고, 알리는 글러브를 벗고 바닥에 뒹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상대방의 게임규칙대로 하면 백전백패일 것이 불 보듯 환했으니 양보의 여지가 없었다.

요즘 국회에서 벌어지는 여야의 행태를 보면 흡사 30여 년 전 벌어진 알리와 이노키의 싱거운 대결을 보는 듯하다. 서로 자신들이 유리한 경기규칙을 고집하다 보니 각자 자신들만의 경기를 하는 것이다. 같은 링에서 뛰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종목의 플레이를 하다 보니 경기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여당은 덩치만 컸지 야당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른 채 우왕좌왕하고, 야당은 여당이 제기한 모든 사안에 반대하며 드러누웠다. 이를 지켜보는 관중은 허탈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하다. 이종격투기가 이런 식이라면 흥행에 실패해 판을 접어도 진작에 접었을 것이다.

올해 예산심의의 쟁점은 4대 강 사업이다. 민주당은 세종시 문제나 미디어법 재개정 요구까지 예산과 연계해 총력투쟁을 벌이겠다고 하지만 명분 없이 전선을 복잡하게 넓혀서는 이길 가망이 없다. 문제는 예산과 직접 관련된 4대 강 사업도 종목을 잘못 골랐다는 점이다.

야당이 내세우는 4대 강 사업 반대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졸속 추진에 대한 우려이고, 다른 하나는 4대 강 사업에 대한 예산 편중의 문제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런 이유로 반대한다고 해도 4대 강 사업을 막기에는 명분과 실리 면에서 모두 불리하다. 잘하면 몇 군데 흠집을 낼 수는 있겠지만 사업을 무산시킬 수도, 틀을 바꾸기도 어렵다. 4대 강 사업은 누가 뭐래도 이명박 정부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사업이고, 정부여당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를 밀어붙일 각오다. 4대 강 사업의 요체는 물관리 사업이다. 수량을 확보하고 수질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핵심적인 목표다. 이 목표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나머지는 어차피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환경문제나 예산배정은 추진과정에서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는 사안일 뿐 사업을 중단시키거나 되돌릴 만한 하자가 아니다. 야당이 이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지려 해도 일단 사업의 목적에 동의하고 사업을 추진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가능하다. 반대를 하려 해도 MB식 4대 강 논법에 따라 그의 문법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대 강 사업을 문제 삼을 때마다 MB식 게임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남의 종목의 경기에서 이길 가망은 별로 없다. 민주당이 예산국회에서 종목을 잘못 택한 이유다.

대통령이 4대 강 사업을 임기 내에 마치려고 서두르는 인상이 짙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만한 이유로 사업을 뒤집을 만큼 야당의 논거가 충분하지는 않다. 또 한 가지 민주당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4대 강 사업이 MB 자신의 욕심만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지지를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산강 수질 개선은 전라남도민의 숙원사업이요, 낙동강의 수량 확보는 경상도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지역경제에 불씨를 지피기 위해서라도 사업을 빨리 추진해야 한다는 게 지역민들의 간절한 열망이다. 정히 궁금하다면 해당 지역민들의 말을 직접 들어 볼 일이다.

민주당은 아무래도 경기종목을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남의 경기에 나가 발목만 잡는 플레이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