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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때 김두한파 행동대장 '꼬마' 이상욱씨 타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장군의 아들' 김두한과 함께 암울했던 일제시대 때 한국인의 기개를 떨쳤던 협객 '종로 꼬마' 이상욱(李相旭.사진)씨가 자신의 시신을 의학도의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18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李씨의 유가족들은 지난 14일 82세의 나이로 타계한 고인의 시신을 유언에 따라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를 통해 해부학 실습용으로 사용해 달라며 기증했다는 것이다.

김두한씨와 함께 어린 시절 서울 수표교 밑에서 거지생활을 했고 평생 둘도 없는 친구로 지냈던 李씨는 키는 작았지만 1930년대 말 중국무술 십팔기.박치기의 명수로 종로주먹 패 행동대장을 맡아 활약했다.

그의 활약상은 영화 '장군의 아들' 에서 그려져 수많은 사람들에게 '종로의 마지막 주먹' 으로 뇌리에 남아 있다.

해방 후 김두한씨가 정치에 투신했을 때도 그는 정치에 눈을 돌리지 않고 삶의 터전이었던 종로에서 시계.전자제품 제조업을 했다. 제조업으로 번 돈은 함께 생활하는 후배들을 돕는데 모두 사용했다고 한다.

李씨가 시신기증을 결심한 것은 그가 동맥경화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던 93년. 그를 간호하던 아내 홍명자(洪明子.72.서울 강서구 방화동)씨가 병원에서 의학도들이 실습을 위해 시신을 외국에서 고가로 수입한다는 소식을 듣고 李씨와 상의한 뒤 함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장기기증과 시신기증 의사를 밝혔다.

프로복싱 한국챔피언이었던 첫째 아들 이강산(46)씨가 임종을 앞두고 눈물을 흘리며 만류했지만 "죽은 뒤 썩어서 없어지느니 세상에 무엇인가를 베풀고 떠나겠다" 는 그의 결심을 막을 수 없었다.

洪씨는 "돈을 주겠다며 시신을 달라는 곳도 있었지만 좋은 뜻이 퇴색될까 두려워 거절했다" 며 "평생 협객으로 살았던 남편이 죽어서나마 좋은 일을 하게 돼 기쁘다" 고 말했다.

李씨의 시신은 실습용으로 쓰인 뒤 화장절차를 거쳐 연세대 의대 납골당에 안치된다.

이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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