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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은·조혜연, 한국여자바둑 '쌍두마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박지은(17)과 조혜연(15) 두 소녀 쌍두마차가 2000년 한국 여자바둑의 앞길을 시원하게 열고 있다.

공격력이 탁월해 오래 전부터 '여자 유창혁' 으로 불려온 박지은2단은 지난 11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여류명인전 결승 최종국에서 이영신2단에게 대불리의 바둑을 역전시켜 아슬아슬한 반집승을 거두고 2승1패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미완의 대기' 로 손꼽히며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아 온 박지은은 드디어 첫번째 정상 등정에 성공하면서 '박지은 시대' 의 도래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불과 사흘 뒤인 14일, 박지은보다 두살 어린 조혜연이 흥창배 결승3번기 첫판에서 세계 최강의 여자기사 루이나이웨이(芮乃偉)9단을 백 불계로 격파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흥창배는 세계대회라 국내대회인 여류명인전과는 격이 다르다. 더구나 상대는 지난해 승률1위를 기록했고 올해 들어 이창호9단.조훈현9단을 연파해 최대의 화제를 뿌리고 있는 '철녀' 芮9단이 아닌가.

그렇다면 박지은이 센가, 조혜연이 센가. 누가 더 가능성이 있는가.

박지은2단은 여자 프로 중에선 유일하게 '한국기원 연구생 1조 출신' 이다.

연구생 1조라면 아직 프로는 아니지만 프로9단들도 맞바둑으로 척척 꺾어내는 실력자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박2단이 이곳에서 남자들과 5대5의 실력을 보였기에 한국기원의 원로들은 여자 중에 드디어 '물건' 이 나왔다고 확신했고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다.

이처럼 박지은이 오래전부터 주목의 대상이었다면 조혜연은 '아직 자라고 있는 유망주' 정도로 꼽혔다.

하지만 14일 조혜연이 루이나이웨이9단을 거의 완벽하게 격파하면서 9단들의 평가도 변하기 시작했다.

박2단은 여류명인전에서 이영신2단에게 첫판을 백을 들고 반집 졌고 2국은 흑으로 불계승했다.

백을 든 최종국은 초반의 대착각으로 99% 졌다가 극적인 반집 역전승. 실력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떨어지는 것이 흠으로 비쳐졌다.

이에 비해 '한수 아래' 로 여겨져 온 조혜연은 芮9단의 열화와 같은 공격을 잘 막아냈을 뿐 아니라 芮9단이 실리부족을 느끼고 종반에 무리수를 두자 즉각 공격으로 변신해 대마를 잡고 완승을 거뒀다. 이 일련의 선명한 스토리가 조혜연을 다시 보게 했다.

때마침 한국기원은 芮9단을 꺾은 조혜연에게 '여자 이창호' 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박지은의 '여자 유창혁' 보다 한단계 높은 이미지의 별명을 과감히 내준 것이다.

과거 이창호9단과 유창혁9단은 승부에선 라이벌이면서도 평소엔 함께 연구하여 한국바둑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박지은과 조혜연에게도 그런 우정어린 경쟁을 기대하는 것이다.

우승상금 3천만원의 흥창배에서 1대0으로 앞선 조2단은 16일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2국에서 이길 경우 이창호가 세운 세계대회 최연소우승기록(17세)을 경신하게 된다. 1대1이 되면 18일 최종국을 둔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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