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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세상 부러워하던 눈들, 서울을 보기 시작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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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 원서동 한옥 풍경. 옹기종기 아담한 한옥이 어깨를 맞댄 좁은 골목에 가로등 불빛이 푸근해 보인다. [민음인 제공]

정독 도서관, 덕수궁 돌담김, 삼청동길, 창덕궁, 청계천, 광화문…. 요즘 서울이 지식사회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서울의 안팎을 파고든 책이 잇따르고 있다. 외국인을 위한 관광안내서가 아니다. 좁게는 서울 사람, 넓게는 우리 시대 한국인 위한 인문 교양서다. 일례로 지난주 북촌을 다룬 『서울, 북촌에서』(김유경 지음, 민음인)와 『북촌 탐닉』(옥선희 지음, 푸르메)이 나란히 출간됐다. 조선 궁궐의 수난사를 돌아본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우동선 외 지음, 효형출판), 서울에서 나고 자란 건축가 부부의 『서울풍경화첩』(임형남·노은주 지음, 사문난적)도 최근 나왔다. 가히 ‘서울 탐구 전성시대’다.

◆북촌에서 궁궐까지=이 책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사람 냄새, 소위 일상성이다. 이를테면 『서울, 북촌에서』는 사료·문헌에 의존하는 역사 서술과 거리가 멀다. 저자는 삼청동에서 성북동까지, 서울 성곽에서 언더그라운드 공간까지 북촌 구석구석을 누비며 그간 만난 지역주민·상인·예술가 삶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세종문화회관을 설계한 건축가 엄덕문씨에게 세종문화회관 건축 뒷이야기를 듣는가 하면, 북촌 한옥집의 주부가 가꾼 정원을 들여다본다. 일상의 강조는 『북촌 탐닉』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10년 동안 북촌에서 살았던 저자는 창덕궁길·계동길·재동길·별궁길·화개길·삼청동길을 순례하며 자신의 하루하루를 고스란히 풀어놓는다.

저자들의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지난해 서울의 생태·풍속을 풍부하게 그려내 주목 받은 『서울은 깊다』는 국사학자 전우용 박사(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가 썼다. 서울걷기답사 필독서로 꼽히는 『옛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를 쓴 이현군 박사(서울국토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는 역사지리학자다. 2005년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를 쓴 황두진씨, 2006년『서울, 골목길 풍경』을 낸 임석재 교수(이화여대)는 건축전문가다.

◆골목길의 재발견=요즘 서울 관련서는 거대도시를 내세우지 않는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서울의 재발견에 방점을 찍는다. 대표적 아이템이 ‘골목길’이다. 황두진씨와 임석재 교수는 “서울을 가장 서울답게 해주는 것은 화려한 고층빌딩이 아니라 삶의 모습이 알알이 박혀있는 모퉁이 골목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풍경화첩』도 세운상가 인근의 예지동 골목과 피맛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았다. 지은이는 “건물은 없어지면 복원이 가능하지만 길은 없어지면 복원이 쉽지 않다…그런데도 민관이 합심하여 열심히 부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무분별했던 도시계획에 대한 자성이다.

◆왜 지금 서울인가=‘서울 열풍’은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다. 서울시립대 김성홍 교수(건축학과)는 우리 학계의 성숙을 주목했다. 1990년대 이후 인문학 영역이 넓어지면서 사회와 일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것. 『조선의 뒷골목 풍경』『모던 뽀이 경성을 거닐다』 같은 조선시대·일제강점기의 미시사 연구가 근·현대 서울로까지 확장된 셈이다. 김 교수는 “서양문화를 주로 좇아갔던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우리 문화의 가치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며 “우리 스스로 자신감이 높아진 것도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개발 일변도 정책에 대한 자성도 ‘서울 돌아보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서울의 역사가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요소며, 또 도시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민음인 출판사의 양재화씨는 “북촌은 보존과 개발이라는 이슈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공간”이라며 “서울을 주제로 한 소소한 이야기 밑바탕에는 일방적 개발에 대한 반성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한양대 건축학부 서현 교수는 도시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그는 “서울 관련 서적의 저자 대부분이 30대 중반에서 40대 후반”이라며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많은 외국 도시를 경험했던 중년 세대가 이제 우리 생활공간을 따져보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이를 ‘로컬리티(지역주의)’의 부상으로 풀이했다. 그는 “과거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국가단위로 이뤄졌다면 요즘에는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체험이 우선시된다”며 “공간에 대한 탐색 역시 개인의 경험이 핵심요소로 떠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은주 기자

‘서울’ 관련 책 어떤 게 있나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권기봉 지음, 알마, 2008.1)

- 『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전우용 지음, 돌베개, 2008.5)

-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 당신이 몰랐던 서울의 가볼 만한 곳』 (박상준 글, 허희재 사진, 한길사, 2008.8)

-『 그 골목이 말을 걸다 : 골목이 품은 서울의 풍경』

(김대홍 지음, 넥서스, 2008.9)

-『서울 문화 순례』 (최준식 지음, 소나무, 2009.3)

- 『아지트 인 서울 : 컬쳐, 트렌드, 피플이 만드는 거리 컬렉션』 (이근희 외 지음, 랜덤하우스, 2009.7)

- 『서울 문학의 도시를 걷다』 (김성연 지음, 터치아트, 2009.8)

- 『나는 골목에 탐닉한다 : 도시를 산책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 (권영성 지음, 갤리온, 2009.9)

- 『옛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 역사지리학자의 서울 걷기 여행』 (이현군 지음, 청어람미디어, 2009.9)

-『서울풍경화첩 : 지금, 여기, 서울의 진경을 그린다』

(임형남·노은주 글·그림, 사문난적, 2009.10)

-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 : 제국의 소멸 100년, 우리 궁궐은 어디로 갔을까』 (우동선 외 지음, 효형출판, 2009.11)

- 『쑹내관의 재미있는 궁궐 기행』 (송용진 글·사진, 지식프레임, 2009. 11 개정판)

- 『서울, 북촌에서』 (김유경 글, 하지원 사진, 민음인, 2009.11)

-『북촌 탐닉』 (옥선희지음, 푸르메,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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