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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도 저작권법 적용] 베토벤 연주때도 악보 사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프리마 발레리나 강수진씨는 지난해 '한국을 빛낸 발레스타' 공연때 안무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1998년 자신이 주역을 맡았던 '춘희' 의 일부 장면을 공연하려고 했으나 안무자인 함부르크 발레단 예술감독 존 노이마이어가 안무사용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촉박한 스케줄 때문에 직접 지도할 시간이 없다는 것. 결국 이 발레단 예술감독이 대신 지도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았다. 30초 이상 TV촬영 금지 등의 조건도 붙었다.

저작권료를 낸다고 사용허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작품의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 까다로운 조건도 내건다.

안무가 조지 밸런친 사후에 만들어진 밸런친 재단은 그의 모든 안무에 대해 저작권료와 트레이너 비용까지 받고 있다.

뿐만 아니다. TV방영료 등 영상물 제작에 따른 저작권도 확실하게 챙긴다.

유니버설 발레단 김용주 과장은 "지난해 헝가리 공연 당시 촬영한 공연실황이 TV에 방영된다는 사실을 연주를 맡은 현지 오케스트라 관계자에게 무심코 말했다가 계획에 없던 방영료를 줘야 했다" 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공연계는 저작권 사각지대나 마찬가지다. 예외적으로 삼성영상사업단이 제작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42번가' 나 에이콤의 '페임' 등이 새 저작권법 발효 이전부터 저작권을 지불한 정도다.

발레의 경우도 유니버설발레단이 밸런친이나 부르농빌의 안무작을 작품당 5천~7천달러, 회당 2백~5백달러에 계약해 공연했지만 이는 일부 직업단체에 국한된 예외 현상이다.

국내 공연계에 대한 외국의 신뢰는 이미 땅에 떨어져 있는 상태다. 한 극단 대표는 "저작권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외국작가를 만났더니 '한국에서 언제 저작권료를 챙겨줬느냐' 며 의아하게 생각하더라" 고 말했다.

음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악보 대여료 등의 저작권료를 제대로 내고 연주하는 연주단체는 거의 없다.

베토벤이든 브람스든 현재 판권을 갖고 있는 외국 출판사에서 총보(지휘자용)와 파트보(단원용)를 사거나 빌려야 한다. 해당 출판사에서 이를 추궁한다면 문제가 커진다.

한 오페라단은 지난해 2월 미국 작곡가 팔레스티나(61)의 오페라 '델루조 아저씨' 를 무단 연주했다가 저작권료 1천만원을 요구받았다. 결국 3백만원으로 합의했지만 아직도 지불하지 않아 국제 음악계의 빈축을 사고 있다.

지난해 11월 인천.수원.성남.안산시립합창단도 성가곡을 CD로 녹음했다가 미국 출판사에서 저작권료 1천3백만원을 요구받았으나 이를 내지 않아 열배의 벌금을 물어야 할 판이다.

성가곡을 라이선스 출판하고 있는 선민음악출판사 대표 최장욱씨는 "미국 출판사들이 악보를 가위질해 복사하는 한국 교회 성가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 말했다.

이장직.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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