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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방에선] 빗나간 문화유적지 복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세계 각국이 문화관광상품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명작의 무대가 됐던 지역이나 큰 업적을 남긴 인물들의 고향 등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작품의 산실이나 생가를 기념관으로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 프란츠 카프카의 생가가 있는 체코의 프라하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고향이자 기념관이 있는 영국의 코커머드, 하이네의 아름다운 시 '로렐라이' 무대인 라인강변 암벽에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충남 홍성의 만해 한용운 생가나 경북 안동의 유성룡 생가를 찾는 사람들이 날로 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 위한 '억지 춘향식' 문화유적지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

전북지역에서 건립 중인 미당 서정주(徐廷柱)시인의 문학기념관과 독립유공자 이종희(李鍾熙)장군의 생가 건립이 대표적 예에 속한다.

빼어난 서정시인으로 평가받는 미당은 과거의 친일행각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성을 표시한 적이 없어 문단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굳이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려야 한다면 문화 선진국의 관례대로 기념관 건립보다 생가 복원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고창군은 10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생가 인근에 미당문학기념관을 짓고 있다.

김제시가 벌이고 있는 李장군의 생가 복원사업은 더욱 가관이다. 李장군은 이범석 장군과 더불어 광복군 제1지대장으로 활약하고 임시정부위원을 지내기도 한 인물로 1977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됐다.

김제시는 李장군 생가 소유자가 집을 팔지 않자 편법을 사용한다. 정부에서 따온 예산을 반납할 수 없다며 금산면 용호리 하천부지에 별도의 생가를 짓고 있는 것이다.

관광객 유치나 생색내기에 급급한 시멘트 기념관 건립, 태생지가 아닌 곳에 별도로 짓는 생가는 분명한 역사 왜곡이다.

특히 관광 고부가가치란 특별한 목적으로 건립된, 보여지는 인공미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에 기초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신정일 <황토현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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