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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하이닉스·대우조선 매각, 급할수록 돌아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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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효성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에서 손을 뗐다. 올해 초 한화그룹이 대우조선 인수를 포기했고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을 삼켰다가 다시 토해 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들이 새 주인 찾기에 잇따라 실패한 것이다. 무리한 매각과 시중에 퍼진 특혜설, 인수업체들의 자금조달 차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런데도 채권은행들과 자산관리공사는 연내 재매각을 서둘고 있다. 매각대금이 수조원대인 대우조선·하이닉스·대우건설·현대건설 등 대물급은 물론이고 대우일렉트로닉스·쌍용건설 등 수천억원대의 인수합병(M&A) 매물들도 적체 현상을 빚고 있다.

경제위기를 갓 벗어난 시장 상황에서 이런 매물 홍수를 제대로 소화하기는 어렵다. 대기업들은 내실 다지기에 치중하면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중견그룹들은 무리한 차입을 통해 인수에 나섰다가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 대기업들은 외면하고 중견그룹들은 능력에 부치는 것이다. 물론 공적자금 투입 기업의 매각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제값을 받는 것이다. 채권은행들이 해외매각의 유혹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M&A 시장에는 차이나달러와 오일달러만 판을 치는 게 현실이다. 첨단기술의 해외유출은 이미 쌍용자동차 사례에서도 증명됐다. 제값 받기 못지 않게 비중을 둬야 할 사안이 국가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다.

정부와 채권은행들이 매각을 서두르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채권은행들은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이 좋아지고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를 통해 재정적자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러나 하이닉스·대우조선·대우건설에서 보듯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매각이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게다가 조선·건설업종은 침체에 빠져있고 반도체산업은 이제 갓 치킨게임에서 승리한 상황이다. 지금은 매각을 서두르기보다 정부가 ‘시장 조절’에 나서야 할 때라고 본다. 매각 주체가 산업은행·자산관리공사·정책금융공사인 만큼 사전 교통정리를 통한 순조로운 매각이 중요하다. 시장 충격을 덜기 위한 인수조건 완화와 단계적 매각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