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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새 10% 내린 급매물도 안 팔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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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서울 강남권 아파트 매매시장에 찬바람이 분다. 대출규제 및 자금출처 조사 등으로 매수세가 뚝 끊긴 가운데 급매물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 잠실동의 한 상가에는 10여 개의 중개업소가 모여 있지만 찾는 사람이 드물다. [권이상 기자]

총부채상환비율(DTI) 확대의 충격인가, 집값이 꼭대기까지 올랐다는 경계심리 때문인가. 서울 강남권 등 집값을 이끌던 주요 지역의 주택시장이 요즘 극심한 침체에 빠졌다. 가격이 급속히 빠질 뿐 아니라 손님이 없어 거래도 전혀 안 된다. 최근 두어 달 만에 생긴 일이다. 부동산정보협회 조사에 따르면 강남권 아파트값이 10월 둘째 주 이후 5주일 연속 하락했다. 버블 세븐 지역의 아파트 시가총액이 최근 한 달 동안 1조원이나 줄었다는 조사도 나왔다. 강남권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하나같이 “폭탄을 맞았다”며 아우성이다.

14일 오전 10시 잠원동의 반포쇼핑센터. 10여 개의 공인중개사 사무실이 모여 있지만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한 업소의 공인중개사는 무료한지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고 있다. 권모 공인중개사는 “최근 한 달간 일한 게 월세 거래 한 건뿐”이라며 “이러다 문을 닫는 건 아닌지…”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올 상반기 거래가 활발했던 개포동 개포주공 1단지. 20여 곳의 중개업소가 몰려 있는 이곳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개포부동산에 들어가 “요즘 어떠냐”고 묻자 채은희 공인중개사는 “문의 전화가 두 달 전보다 4분의 1로 줄었다”고 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빨리 팔려면 가격을 많이 낮춰야 한다”고 상대방에게 말했다. 추석 이전 개포주공 1단지 49㎡형을 10억5000만원에 팔기로 했다가 생각을 바꿔 팔지 않은 집주인의 전화였다. 그는 “지금 이 아파트값이 9억7000만원 선으로 내렸다”고 했다.

오후에 찾은 강남구 도곡동 렉슬 단지의 중개업소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 달 전만 해도 없었던 급매물 전단이 붙어 있다. 이곳의 한 공인중개사는 “3002가구나 되는 대단지인데도 추석 이후 한 건도 거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개업소의 매물 리스트에는 9월 14억원에 팔렸던 109㎡형이 12억5000만원에 급매물로 나와 있다.

이 같이 매수세가 움츠러든 것은 추석 직후인 지난달 초부터다. 한 달 전보다 10%가량 값을 내린 아파트 급매물도 나온다. 대표적인 재건축 대상 아파트인 잠실주공 5단지 112㎡형은 9월 말 12억7000만원 선에서 최근 11억5000만원으로 떨어졌다. 새 아파트인 잠실 엘스 109㎡형도 같은 기간 10억원 후반대에서 9억7000만원으로 내렸다.

고공 행진하던 강남권 아파트 시장이 한 달여 만에 고꾸라진 이유는 뭘까. 중개 현장에서는 세 가지가 얽혀 있다고 한다.

우선 대출 규제가 ‘독소’로 작용했다고 한다. 잠실동의 박준 공인중개사는 “은행에 이어 제2금융권의 DTI 규제가 강화되자 강남권 진입을 포기하는 수요자가 크게 늘었다”고 했다. 둘째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 매수자에 대한 자금 출처 조사 방침이다. 잠원동 강철수 공인중개사는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사려면 10억원 안팎의 돈이 필요한데 이 돈의 출처를 명확히 밝힐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했다.

셋째는 ‘너무 멀리 간’ 집값 때문이다. 도곡동 서울 유화부동산 최선임 대표는 “2006년 최고점 근처까지 아파트값이 회복되자 더 오르기는 힘들 것으로 수요자들이 판단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대세 상승으로 돌아서기 힘들다는 게 주택수요자를 접하는 공인중개사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그렇다고 급락의 여지도 별로 없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도곡동 정수지 공인중개사는 “강남권은 수요층이 탄탄해 언제든 다시 오를 힘이 있다”고 분석했다. 역삼동 선경공인 김용보 대표는 “경기가 확 풀리지 않는 한 주식시장의 박스권 등락 장세와 같이 일정 범위 내에서 오르내림을 반복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함종선 기자, 사진=권이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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