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 클래식 강국 핀란드가 뜬다] 하. 예술도 공공서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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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핀란드인들에게 음악은 매일 호흡하는 맑은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청중 없이 간판만 유지하는 연주단체, 상아탑에 안주하는 작곡가는 핀란드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오늘날 핀란드를 클래식 강국으로 끌어올린 원동력으로 꼽히는 시벨리우스 음악원은 66년부터 정부가 예산의 95%를 지원하고 있다. 이 국립음악원은 빈음악원.쾰른음대에 이어 유럽에서 세번째로 큰 규모다.

핀란드 정부의 예술지원금은 연간 30억 유로(약 3천6백억원). 인구 대비로 보면 프랑스의 1백50%나 된다.정부가 예술가의 생활비를 전부 대주는 '아티스트 그랜트' 제도가 특징이다.

1년(1백12명).3년(41명).5년(22명)제가 있는데 98년의 경우 음악(14%)분야 지원금은 미술(41%).문학(25%)의 다음을 차지했다. 작품을 꼭 써내야 하는 의무조항은 없고 창작에 몰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교향시 '핀란디아' 로 유명한 핀란드의 작곡가 잔 시벨리우스(1865~1957)가 32세부터 국가연금을 받아 42세부터는 종신 연금을 받았을 뿐 아니라 헬싱키 북쪽 30㎞에 獵?야르벤파 숲에서 작업하는 그를 위해 비행기 항로까지 수정했다는 사실은 음악가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어느정도인지 가늠케 한다.

핀란드 정부가 예술을 건강이나 교육.주택처럼 국민이 누려야 할 공공 서비스로 인식하게 된 것은 지난 69년부터. 유치원부터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악교육기관을 국가가 지원해 직업음악가 뿐만 아니라 미래의 청중, 즉 '평생 음악애호가' 를 키워낸다. 돈이 없어서 음악을 못 배우는 사람은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시민들인지라 교향악단 창단에도 발벗고 나선다. 93년부터 시행된 교향악단법에 따라 22개 오케스트라의 예산가운데 25%는 국가 몫이다.

그러나 정부가 교향악단 창단에 나서지는 않는다. 지방의 음악애호가들이 주축이 돼 창단하고 지방도시의 지원(예산의 60%)을 확보해 자생력을 키우면 국가가 비로소 지원한다.

1882년 창단된 헬싱키필하모닉은 1919년에야 시 산하로 편입됐다. 그래서 '핀란드엔' '오케스트라 없는 도시는 도시가 아니다' 라는 말까지 나돈다. 인구가 적어 지방에는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많은 편이다.

그 중에서 코콜라(인구 3만명)에 있는 오스트로보스니안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세계 정상급으로 꼽힌다.

국가의 지원폭이 큰 만큼 청중이 부담하는 비용은 적은 편. 교향악단의 평균 입장료는 1만~1만7천원에 불과하다.

객석이 매진되는 공연도 자주 볼 수 있다. 별도의 페스티벌이 필요 없을 정도로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비율도 높다.

95년 핀란드 교향악단들이 초연한 신작은 46곡. 97년부터 상주(常住)작곡가 시스템도 도입했다. 청중 확보를 위해 학교는 물론 공원.시장.쇼핑센터에서 무료 공연으로 시민과 거리를 좁히고 있다.

핀란드의 춥고 긴 겨울밤을 음악회로 보낼 수 있게 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정부의 육성책이 신흥 음악강국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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